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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근로조건 없이 직책만 제안?···법원 “근로계약 청약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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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151회 작성일 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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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절차 단계에서 임금이나 업무 내용 등 구체적인 제안 없이 직책만 제안한 것은 근로계약 청약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김정중)는 퇴직한 근로자 A씨가 유명 제약회사 D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A는 유명 제약회사 D에서 2009년 퇴직했던 사람이다. 2018년 경 A는 D회사의 옛 대표이사가 역시 D회사에 재직 중인 자신의 남편을 통해 D사에서 근무할 것을 제의하자 이를 수락했다. 채용을 진행하게 된 이 회사 본부장 B씨는 "서로 (일하는) 스타일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A에게 우선 3개월 기간제 근로계약을 제안했고, 결국 A는 2018년 6월부터 3개월의 기간을 정해 일을 하게 됐다.
이후 A의 기간제 계약기간 만료를 며칠 앞둔 9월 20일, B는 A를 10월 1일자로 팀장으로 발령 내기로 정한 다음 윗선에 보고하고 인사발령안 결재를 얻었다. 그리고 A에게 팀장 발령 사실을 알리고 "다만 아직 회사와 부합하는 인재인지, 능력이 있는지는 100% 확신하지 못하겠다. 서로 함께 개선-보완해 나가자"는 취지의 이메일을 전송했다. 그런데 여기에 화가 치민 A는 사무실에서 심한 욕설을 했고, 주변 근로자들이 그 내용을 듣게 됐다. A는 동시에 B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옳으므로 서로의 길을 가자"라며 부정적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B도 다음날 회신으로 "협의하거나 조정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동안 감사 드린다"고 메일을 보냈고, A는 며칠 뒤 인수인계 절차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의 현 대표C가 A를 만류하고 B에게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됐다.
이후 A는 10월 1일, 대표C와 B에게 다시 잘 일해 보겠다는 취지로 "기존 (계약직) 계약기간은 이미 만료돼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야 되는지 정보가 없다"며 이메일을 보냈고, 대표C도 A에게 "멋지게 잘해봅시다"라고 회신을 보냈다. 이후 B도 10월 1일자로 대표와 A에게 "최종 의사결정이 완료돼 입사를 결정했으므로 발령을 추진하겠다"고 메일을 보내면서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다. 이날 A와 B는 바로 이어 연봉 협상에 들어갔지만 정확한 기준을 놓고 다소 이견을 보였다.
그런데 이 날 오후, 과거 A가 사무실에서 욕설을 한 사실을 B가 비로소 부하 직원들로부터 보고 받게 되면서 상황이 또 다시 변하게 됐다. B가 이 사실을 대표 C에게 보고했고, C도 "입사 진행을 재검토 하라"고 지시했다. B도 A에게 "더 이상 채용을 진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채용절차를 중단하는 내용의 통보를 했다. 이에 A가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
쟁점은 부당해고로 보기 위해서 A를 D회사의 근로자로 볼 수 있는가였다. A는 이미 근로계약이 갱신됐다고 주장했다. A는 "회사 측이 인사발령안 결재를 마치고 9월 20일에 팀장으로 발령된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A에게 보낸 점, 28일에 대표이사가 A와 면담을 한 점만 봐도 이미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21일에 A가 B에게 보낸 부정적 메일 역시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게 아니라 인사명령을 거절한 것"이라며 자신이 이미 D사의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갱신이 안됐다고 하더라도) A가 의사를 번복하고 10월 1일자로 근로계약을 새롭게 청약한 것"이라며 "C와 B가 ('멋지게 잘해봅시다'라는 취지로) 승인했으므로, 새로운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A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9월 20일자 이메일은 A가 수행할 업무의 내용이나 근로계약 기간 등을 새롭게 협의하는 것"이라며 "계약직이던 A를 정규직 팀장으로 발령 내는 것은 근로조건이 다른 근로계약이므로, 동일 계약을 반복 갱신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갱신기대권이나 갱신을 부정했다. 이어 "A 역시 갱신과 관련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 평가를 한 점을 보면 갱신을 기대하거나 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간제 근로계약은)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이미 종료됐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도 아니라고 봤다. 회사가 팀장 자리를 제안하거나 인사발령을 하는 취지로 보낸 이메일은 근로계약을 청약하는 수준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재판부는 "직위나 직책 관련 내용은 담고 있지만 임금, 출근예정일, 근로 장소, 종사할 업무 등 근로 조건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A가 승낙하면 바로 계약이 성립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A도 이메일을 통해 명시적으로 21일자 제안을 거절했다"며 "따라서 이미 회사의 채용 제안도 효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0월 1일자로 새롭게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10월 1일자 메일은 A의 채용 희망 의사에 응해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에 불과하고 중요한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이후 당일 오후에 통보를 통해 채용절차를 중단했으므로 근로계약 청약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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