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대 선택권이 있는 근로자의 연차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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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415회 작성일 22-08-18본문
- 대법원 2021-08-12 선고, 2021다222914 판결
- 저자 : 방강수
(1)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에 대한 구속이 엄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정해진 구역 내에서 고객의 주거지에 방문하여 제품의 설치나 점검을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2) 원고들이 피고 회사와 소정근로일수 및 근로시간을 정하여 근로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연차수당이 발생하였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1. 쟁점 및 사실관계
대상판결은 ‘정수기 기사’(원고)를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여 원고의 퇴직금 청구를 인용했으나, 연차수당 청구는 기각하였다. 근로자성 판단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어 긍정적이나, 연차휴가권을 부정한 부분은 매우 아쉽다. 고객과 직접 협의하여 방문서비스 시간을 정하는 정수기 기사는, 근무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이 일부 있다(학습지교사도 그렇다). 근무시간대 선택권은 자연스레 근로일의 선택권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소정근로일이 불명확해지는데, 이런 경우에 연차휴가권의 요건인 ‘출근율 80%’를 어떻게 산정할지 문제가 된다.
피고(앨트웰주식회사)는 정수기 등을 판매하는 회사이다. 원고들은 정수기・샤워기・비데 등의 설치・유지・점검 등의 업무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그 용역업무를 수행하는 ‘앨트마스터’이다. 피고 회사에는 전국에 총 17개 서비스센터가 있고, 각 서비스센터 내에 앨트마스터마다 담당 지역이 정해져 있다(구역할당제).
고객이 피고 회사에 수리・점검 등을 요청하면, 피고는 고객 거주지 관할의 앨트마스터에게 업무를 배정한다. 앨트마스터는 고객에게 직접 연락하여 방문 일시를 정한 다음, 약속된 시간에 고객 주거지에 방문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앨트마스터는 업무를 배정받은 때부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일 내’에 수행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AMS(Altmaster Management System)를 통해 피고의 업무배정과 원고의 업무완료 입력이 이루어진다.
원고와 피고의 용역계약에는 출근일수, 출퇴근시간이나 업무수행시간을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피고는 겸업을 금지하지 않았고, 실제로 다수의 앨트마스터는 다른 직장에서의 소득을 세무관서에 신고하였다. 원고들은 서비스 처리 건당 일정액의 ‘용역수수료’(도급제 임금)를 받았다. 월 급여는 대략 250~300만 원 정도이다.
2. 진일보한 근로자성 판단
학습지 교사와 정수기 기사에게는 아래의 두 가지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 특징이 대법원 학습지교사 판결에서는 근로자성 부정의 근거로 활용된 반면, 대상판결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했다고 평가된다.
첫째, 원고들은 (학습지교사와 마찬가지로) 회사가 업무를 배정하면 고객과 직접 협의하여 방문 일정을 정하였다.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대는 노무제공자와 고객이 협의해서 정한다. 회사가 정해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들은 근무‘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다(즉, 근무시간대 선택권). 또한 원고들의 주된 근무장소는 고객의 거주지이다.
이러한 사정이 학습지교사 판결에서는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의 구속성이 약하다’며 근로자성 부정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반면 대상판결은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에 대한 구속이 엄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정해진 구역 내에서 고객의 주거지에 방문하여 제품의 설치나 점검을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근로자성을 인정하였다.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동의하나, 판단근거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근무시간의 구속 여부는, 근무시간대가 아니라, 근무시간의 총량으로 판단해야 한다. 원고는 회사가 배정한 업무를 거부할 수 없으므로, 근무시간 총량은 회사에 의해 정해져 있다. 따라서 곧바로 근무시간의 구속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상판결은 여전히 근무장소를 사용자의 지배권 하에 있는 사업장(공장, 사무실 등)에 한정하는 그릇된 관점을 갖고 있다. 회사가 지정하는 ‘고객 주거지’가 주된 근무장소인 근로자는 많다. 근무장소의 구속 역시 곧바로 인정해야 한다.
둘째, (학습지교사와 마찬가지로) 원고들의 주된 업무는 ‘회사가 배정한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다. 그리고 부수 업무는 ‘신규고객’을 유치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별도의 수당이 지급된다. 신규고객 유치에 대해서는 약간의 사업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학습지교사 판결은 신규고객 유치로 인한 수당이 근로자성 부정의 근거가 되었으나,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정수기 등을 판매하거나 임대하는 경우 피고 회사로부터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이는 개별적인 영업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피고 회사의 지휘ㆍ감독하에서 그 독려에 따른 영업활동의 결과”라고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이, 원고들의 부수 업무인 “정수기 등을 판매하거나 임대”하는 것(즉, 신규고객 유치)을 “개별적인 영업활동의 결과”(즉, 독립사업자로서의 영업성과)가 아니라고 판단한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3. 소정근로일이 불명확한 근로자의 연차휴가
근기법 제60조 제1항의 연차휴가 요건은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이다. 출근율은 “연간 소정근로일수”와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날”의 비율로 판단하므로, 출근율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소정근로일’이 있어야 한다. 근로‘시간’에 대한 대가로서의 임금을 받는 일반적인 근로자(즉, 시간급제 근로자)의 경우는, 근로계약에 소정근로일과 소정근로시간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그러나 원고들의 경우는 업무 특성상 소정근로일이 불명확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고들은 서비스 처리 건당 일정액의 ‘용역수수료’(즉, 도급제 임금)를 받는 근로자로서, 근기법 제47조의 “도급 근로자”에 해당한다. 원고와 같은 도급 근로자는 근로의 시간이 아닌 근로의 실적 등에 따라 임금을 받기 때문에, 소정근로일과 소정근로시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보다는 ‘서비스 처리 한 건당 얼마를 받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와 피고의 용역계약에는 출근일수, 출퇴근시간이나 업무수행시간 등을 따로 정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원고들은 고객과 협의하여 근무시간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근로일까지도 선택이 가능했다. 판결문상 원고들의 근로일과 근로시간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음과 같은 추정은 가능하다. 피고는 원고들의 겸업을 금지하지 않았고 실제로 원고들은 겸업을 한 것으로 보아 장시간 근로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퇴직금 적용배제 요건인 ‘1주 15시간 미만’ 여부가 다투어지지 않은 점, 원고들이 스스로 1주 40시간 근로했다고 주장한 점 등을 종합했을 때, 원고들의 근로시간은 1주 15시간에서 40시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의 근로시간이면 고강도 노동으로 3일만 근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강도 노동으로 6일간 근로할 수도 있다. 이렇게 원고들은 근로일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대상판결은 ‘소정근로일의 정함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대상판결은 “원심은 원고들이 피고 회사와 소정근로일수 및 근로시간을 정하여 근로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연차수당이 발생하였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부대상고이유 주장은 사실심인 원심의 전권사항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 및 사실인정을 탓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하여, 원고들의 연차수당 청구를 기각하였다.
근기법 제60조 제1항의 연차휴가 요건은, 소정근로일이 분명한 전형적인 시간급근로자를 전제한 규정이다. 그러나 현실에는 소정근로일이 없거나 불명확한 근로자들이 분명 존재한다. 원고와 같이 근로시간대 선택권이 있는, 그리고 근로시간보다는 근로의 실적이 더 중요한 도급근로자들이 그렇다. 대상판결은 소정근로일이 없거나 불명확한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못했다. 법흠결을 방치한 셈이다.
도급근로자에게 연차휴가권이 배제된다는 규정은 없다는 점, 근무시간대 선택권이 있다 하더라도 회사가 배정한 업무를 모두 수행할 의무가 있는 도급근로자에게도 근로의 대가로서의 연차휴가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원고와 같은 근로자에게 연차휴가권을 보장하는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소정근로일이 없다는 이유로 휴식권을 부정하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것이다.
방강수(한양대 공익소수자인권센터 연구원,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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