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3월 8일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와 성취를 기리며, 여성의 인권을 높이기 위한 활동들이 이뤄지는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었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9년 미국의 사회주의 당 소속 여성들이 더 나은 노동조건과 투표권 등 성평등을 촉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1910년 제2인터네셔널 노동여성회의에서 덴마크의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이 세계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제안했고, 여러 유럽 국가에서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하며 국제화가 이뤄졌다. 또한 1917년 3월8일(러시아력 기준 2월23일) 러시아의 여성들이 전쟁과 빈곤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고, 마침내 1975년에 UN이 세계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세계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을 촉진하는 데 기념비적인 날로 자리잡았다.

올해 115주년을 맞이한 3·8 세계 여성의 날에는 매년 그래왔듯이 성별 임금격차, 유리천장, 성평등 지수 등 노동시장 내 고착화된 성불평등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는 기사들이 앞다퉈 쏟아졌다. 물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여성의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고 안티페미니즘이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는 보도자료가 역으로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우려된다. 특히 여성의 취약성 내지는 성불평등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되는 통계가 너무나 단편적이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지 않으며, 되려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하는 집단을 전혀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보도는 표면적으로 드러나 ‘지표의 결과’만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자극적 제목을 뽑아 낸다. 가령 ‘우리나라의 성평등 189개국 중 11위’ ‘우리나라 성격차 146개국 중 99위’ 같은 기사만 보더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두 개의 보도자료 중 무엇이 우리 사회 내 실제 여성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진실일까? 두 가지 모두 진실이다. 다만 이러한 차이는 어떠한 지표를 활용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전자의 성평등을 측정하는 지표는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GI)를 이용한 보도자료며, 후자의 성격차를 측정하는 지표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생산하는 성격차지수(GGI)를 활용한 보도자료다. 즉 여성가족부 폐지를 지지하고 여성이 차별적이지 않음을 주장하고 싶은 집단은 성불평등지수를 활용할 것이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고 여성이 차별적 환경에 직면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은 집단은 성격차지수를 활용할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성불평등지수와 성격차지수를 구성하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데도, 이를 밝히는 보도자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성불평등지수는 모성 사망비, 청소년 출산율, 여성 의원 비율, 중등학교 이상 교육 비율, 경제활동참가율을 구성요소로 삼고 있다. 각 요소는 가중치 없이 동일한 배점을 합산해 평균한다. 그중 우리나라는 모성 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낮고, 중등학교 이상 교육비율이 높아 이들 요소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이 때문에 여성 의원 비율과 경제활동이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총점에서 높아 성불평등지수로 바라본 우리나라는 매우 높은 순위를 기록하게 된다. 반면 성격차지수는 경제참여와 기회, 교육적 성취, 건강과 생존, 정치 권한으로 구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갖는다.

따라서 언론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통계자료가 어떠한 요인에 의해 ‘어떻게’ ‘왜’ 산출됐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가능하다면 통계의 목적도 보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으며, 통계를 이용한 왜곡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도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통계를 왜곡하고 해석하며 혐오를 조장한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노동 문제에 있어서 항상 대표적으로 보도되는 내용은 성별 임금격차다. 최근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의 임금을 받으면 여성은 70만원의 임금을 받는 셈이다. 이러한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이 주로 저임금 시장에 집중된 이중노동시장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다루기보다는 단순히 ‘남성보다 낮은 여성임금’ ‘여전한 노동시장 차별’에 초점을 둔다. 특히 일부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이공계 진학비율이 높고(교육), 이로 인해 고임금 기업에 남성 비중이 높으며(직종), 남성이 더 긴 노동시간을 갖고, 육아휴직 등을 사용하지 않아서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왜 여성이 이공계의 진학비율과 대기업 종사 비중이 낮고, 여성이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으며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배경, 즉 구조적 성차별 문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별 임금격차는 어디까지나 인적자본특성에 의한 차이(difference)이며, 이를 차별(discrimination)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함에도 앞다투어 격차를 차별로 다룬다. 그 결과, 성별 임금격차에 관한 보도에서 반발과 여성혐오로 무장된 답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자극적인 보도를 목적으로 한 통계 오해와 왜곡을 방지하고,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며 구조적 성차별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