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이 발의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전향적 노동입법일까,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꼼수일까.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이 공동으로 연 토론회에서는 “적용범위를 사업장 내로 국한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기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권의 노림수인 직무급제 도입에도 효과가 없다”는 싸늘한 진단이 내려졌다. 다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컸다. 여당에서 먼저 발의하고 다수의석을 가진 야당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에 동의함에 따라 입법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사회 전체 불평등 해소 대안 없는 입법안”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 방안’ 토론회에서 “개별기업이 정한 임금체계에 따라 급여를 지급할 뿐 노동에 대한 객관적 가격은 나라 어느 곳에도 없다”며 “김형동 의원안을 넘어 노동시장 이중구소를 해소하고 개별기업이 아니라 사회 전체, 적어도 특정 산업이나 업종이라는 넓은 범위에서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정책 추진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동 의원안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하면서도 사업장 내부의 사정에 천착해 고용형태에 따라 차별받는 사회 전체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해법이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국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는 기업별 간극이 크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고용노동부의 1월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300명 미만 사업장의 지난해 월급은 346만2천원이다. 그러나 300명 이상 사업장 월급은 592만2천원이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규모의 기업에 다니느냐에 임금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동일 사업장 내 고용형태 따른 임금차별만 금지
초기업 교섭·단협 적용범위 확장 고민해야
김형동 의원안은 같은 사업장 내에서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차별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뼈대다. 그러면서 직무분석은 사용자쪽에 맡기고 있다. 근로자대표 참여를 보장하지만 ‘협의’ 수준으로 좁다. 넓은 의미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형성에 기여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권 교수는 “노동영역에서 불평등은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노조조직률 확대, 초기업 단위 교섭, 단체협약 적용범위 확대를 포함한 노동자 교섭력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 적정 납품단가 보장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직무급제 도입에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직무급과 ‘공정’을 결부하는 정부의 행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전체 노동시장에서 하나의 직무에 하나의 가격이 설정돼 어느 기업이든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면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직무급이 공정성 제고와 관련이 있다”며 “그러나 단일 기업 차원에서 기업의 임금체계를 연공급 또는 직무급으로 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해당 기업 인사관리 효율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상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에 찬성하면서도 김형동 의원안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산업·업종별로 사회적 직무가치 평가와 임금 보상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산업별 노사교섭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만큼 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방안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은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김형동 의원안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연공급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며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포괄임금제 폐지 법안과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법안 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축사를 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관심을 보이는 이 시점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일터에서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만 “정부, 여당의 법안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임금 하향 평준화를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정규직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만들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