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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호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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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740회 작성일 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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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다 경험한 ‘최호걸’입니다

‘원칙’이 우선하는 노·사를 위하여

[인터뷰] 최호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 당선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는 은행 합병 이후 공동위원장 체제를 유지했다. 지난해 12월, 첫 통합위원장을 선출하는 임원선거가 열렸다. 2차 최종결선까지 이어진 이번 선거에서 최호걸 당선인은 50.26% 득표하여, 상대 후보와 47표 차로 위원장에 당선됐다. 기자가 선거 결과를 묻던 밤, 당선자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목 놓아 울고 있었다.



과거 은행 핵심 부서였던 본점 자금부, 영업점 대기업RM팀에서도 일했던 최호걸 당선인은 2004년 구 하나은행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아 당시 하나은행 직원들의 임금차별을 낳았던 분리직군제 폐지에 앞장섰고, 김창근 집행부 임기 연장의 위법성 문제를 지적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최호걸 당선인은 24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대리’다.
최호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 당선인. ⓒ 참여와혁신 이동우 기자 dwlee@laborplus.co.kr
최호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 당선인.

“첫 인터뷰라서 떨리네요.”
금요일 오후는 흐렸다. 광교사거리 근처 카페는 금요일답게 복작거렸다. 최호걸 당선인과 을지로입구역 앞에서 만나 한적한 카페를 찾았다. 자리에 앉은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적은 A4종이 한 장을 건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정직’이었다. ‘정직’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다’는 의미 외에도 ‘신분은 그대로 지닌 채 일정 기간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의미 모두 그에게 해당했다. 그는 과거 김창근 집행부의 임기 연장 문제를 사내 메일을 통해 직원들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2년 6개월을 버티며 대법원 승소까지 받아낸 그는 복직 이후에도 동일한 사유로 열린 인사위원회의 징계로 인해 현재 정직 6개월 상태다.
‘부당해고자가 어디 저 한 명뿐이겠어요?’라며 웃는 그는 지난 12월 10일 하나·외환은행 합병 이후 첫 통합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노동조합 활동의 시작은.
1996년, 후발은행이었던 보람은행에 입사했어요. IMF 이후 보람은행이 하나은행과 합병했고, 이후 저는 본점 자금부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정직하지 못한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거 하나은행은 종합직, FM/CL(Floor Marketing/Clerk)으로 직군이 나누어져 있었어요.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은행’하면 고액연봉을 떠올렸는데, 여행원 비중이 97.7%였던 FM/CL직렬은 다른 직군 급여 대비 57% 수준이었습니다. 은행에서는 직무에 의한 차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영업현장에서는 두 직군이 유사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은행에서는 채용단계부터 분리하여 채용한다고 명시하지 않았고, 근로조건이 다르다는 말도 없었어요. ‘은행이 채용단계부터 속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건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해서 노동청에 진정을 냈습니다. 노동청에서 대기업 최초로 차별제도라고, 하나은행의 인사제도가 간접차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사회에서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점차 사라지는 데 단초가 되긴 한 거 같아요. 심야철야집회, 서명운동도 하고 국회의원 찾아가서 호소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때부터 시작된 거죠. 제 개인의 역사가.
부당해고를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하나은행 노동조합에서는 김창근 위원장 한 명이 4선을 했습니다. 노동법에 보면 노동조합 위원장 임기는 3년을 경과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인정이 안 되는데, 김창근 집행부에서는 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해서 임기를 연장하려고 했어요. 만약 경영진이 인정을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노동조합이 되잖아요. 그래서 직무정지가처분 소송을 걸었는데, 부행장까지 찾아와서 ‘고소를 취하하라’고 회유했습니다. 그럼에도 취하하지 않으니까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서 선거를 실시하게 됩니다.
당시 대의원대회가 열렸을 때 김창근 위원장은 제 실명을 거론하면서 본인의 사적인 욕심 때문에 소송으로 노동조합에 위해를 가했다는 식으로 전 조합원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도 정당하게 방어권을 행사해야 하잖아요. 우리 노동조합의 현 상황과 불법 임기 연장의 의미를 알리고, 우리 직원들의 행정권,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퇴 촉구와 노동조합 정상화를 주장하는 답글을 사내망 메일로 보냈죠. 김창근 위원장은 임기 1년 선거에 다시 당선되었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은행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사내망 메일을 업무 외적인 용도로 썼다’,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직원들을 선전·선동했다’, ‘개인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등의 이유로 저를 해고했습니다.
이후 저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로 시작해서 행정소송까지 2년 6개월의 시간을 거쳐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아 승소하여 복직했습니다. 소송과정에서 은행이 김앤장이나 율촌과 같은 대형로펌을 써서 대응하는 걸 보면서, ‘은행이 나를 마치 공안사범 보듯이 하는구나, 나를 이렇게까지 보는구나’ 생각하니까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복직 후에도 은행이 저를 본점 도서관에 방치해두더라고요. ‘왜 발령 안 내느냐’고 한 달가량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겨우 영업점 발령으로 일하게 됐는데, 다시 올해 5월에 인사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복직할 때 담당자한테 ‘다시 징계를 할 거냐’고 묻는데, 그건 답변할 수 없다고 들었어요. 지난 5월에 하도 불안해서 징계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지점 같은 경우는 한 명이 빠지면 타격이 커요. 제 개인의 피해도 피해지만, 지점에도 큰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상반기 끝나기 전에 빨리 하라’고 요구했는데, 두어 달 끌다가 8월 29일자로 정직 6개월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제가 일을 한 지 24년 됐는데요, 승진 한 번 한 적 없어요. 저는 여전히 대리입니다. 행원이죠. 오랜 시간 겪다보니까 아쉬움 같은 건 없습니다.
이번 노조 임원선거에서 은행의 선거 개입 정황이 포착됐다고.
노동자 정신을 보장하자는 건 헌법에 의거한 말입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각자의 영역이 있는 겁니다. 선거 개입은 그 영역, 권리를 침범하는 거잖아요. 이건 범죄이자, 조직의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한테 들어온 제보에 의하면 지점마다 임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책임자들을 불러다가 선거에 개입했다고 해요. 특정지점에서는 지점장이 한 명 한 명 불러서 ‘너 몇 번 찍을래?’하고 물은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전화해서 몇 번 찍으라고 했다고도 하고요.
선배가 후배들에게 좋은 걸 물려주듯, 우리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회사를 들어갔을 때 좋은 문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부모세대의 역할입니다. 직원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누군가 조직을 오래 가지면 권력이 되고, 권력이라는 칼을 잘못 휘두르면 조직이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김정태 회장이든 누구든, 왔다가 가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직원들은 이곳에 평생을 바쳐야 합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누구나 차별 없이 인정받을 수 있는 일터가 되어야죠.
새로운 집행부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지.
노동조합을 대변하는 대표의 입장에서 우리의 일터가 은행이라는 특징을 고려하여 ‘원칙’과 ‘소통’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금융은 우리 사회 곳곳에 필요한 ‘피’와 같아요. 때문에 은행은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살며, 신뢰로써 지속가능합니다. 신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원칙’이며 조직 내외로 이러한 가치들이 우선시 된다면 KEB하나은행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명의, 소수의 생각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직원들의 아픔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노동조합이란 ‘십자가’와 같다고 생각해요. 종교인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게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하려고 해요. 함께 길을 가는 동료들이 무거워한다면 ‘내가 더 들어줄게’ 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KEB하나은행은 제가 24년 동안 몸담았던 곳입니다. 저는 KEB하나은행에 애정이 많아요. 해고까지 당했는데 무슨 미련이 있겠냐고들 하겠지만, 그래도 애정이 많습니다. 그 애정의 바탕은 저와 함께 했던 동료들입니다. 노동조합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기반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원칙이 우선하는 노사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지부

“제가 딸바보거든요, 선거기간 중에 제 생일이 있었는데… 자랑하는 거니까…”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정성껏 적은 편지를 꺼내 보였다. 그는 가족 얘기가 나올 때면 지난날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해고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출근하는 척 ‘아빠, 다녀올게’하며 현관을 나섰던 나날들이 그의 가슴 깊이 남아있다.
최호걸 당선인의 선거포스터 하단에는 ‘부당해고 복직자’라는 말이 기재되어 있다.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여러 매체에서 기사가 나갔고, 기사를 읽은 초등학교 5학년 딸은 엄마에게 ‘부당해고 복직자’가 무어냐고 물었단다. 그가 기자에게 건넨 A4종이 끝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산전수전 다 경험한 최호걸이다. 직원들이 KEB하나은행을 다닌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겠다. 정직하고 공정한 KEB하나은행을 만들기 위해 내 인생을 바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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