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가 노동자복지관을 운영하는 노동단체에 공간 사용료를 부과하는 조례를 통과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복지관을 운영하는 노조들이 공간 사용을 이유로 최소 수천만원에 이르는 금액을 매년 부담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10일 본회의를 열고 김지향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노동자복지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처리했다. 조례안에 따르면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을 서울시에게 위탁받아 운영하는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와 강북노동자복지관을 운영하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위탁운영이 종료되는 올해 9월부터 사무실 사용료를 내게 된다. 세부 기준은 시장이 정할 수 있고 감면 등이 적용될 여지가 있지만 한국노총 서울본부는 연간 약 2억원,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최소 6천여만원 이상을 부담하게 된다. 다만 서울시가 노동자복지관을 이전처럼 재계약하는 게 아니라 공개 입찰하겠다고 밝혀 운영단체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운영단체가 바뀌게 되면 양대 노총 서울본부는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번 조례안이 국민의힘 주도로 통과된 만큼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조례안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노동자복지관은 74개다.
노동복지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소 20여년에서 30여년동안 노동자복지관을 운영해 온 양대 노총을 대신해 노동자 복지사업이나 법률상담 등을 수행할 주체가 있는지도 문제다. 양대 노총의 지역본부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맡아야 할 사업들을 대신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노조를 대신할 역량 있는 단체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한국노총의 관계자는 “수억원에 이르는 사용료를 노조, 지역본부가 부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사실상 노조더러 나가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십년간 지자체와 정부가 할 일을 노조가 위탁받아 조례대로 운영해 왔다”며 “30년을 운영해 왔지만 사무실 사용료를 지불하라는 요구는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강북노동자복지관 관계자도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는 단위노조들이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어 지불 능력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위수탁 계약대로 운영주체가 공간의 15%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사무실로 썼을 뿐인데 일부 언론과 시의회 주장대로 특혜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이사장은 “미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라고 서울시가 운영권한을 줘 놓고 임대료를 부과하는 것은 과한 조치”라며 “여타 복지시설도 위수탁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노동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 사회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노동자복지관이 필요하기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이나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노사관계발전법) 등을 개정해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