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가 회계장부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 86곳을 대상으로 15일부터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를 시작한다. 다음달 중순부터는 회계장부 등이 현장에 비치·보존돼 있는지 조사한다. 현장조사를 막으려는 노동계와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부는 공무집행 방해죄 등을 적용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정 관계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점검 대상 중 73% 자료제출
노동부가 14일 ‘노조 회계서류 비치·보존의무 자율점검 시정지시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노동부는 지난달 1일 조합원 수 1천명 이상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34곳을 대상으로 회계장부 관련 서류비치·보존 의무를 이행했는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4조에 따라 노조가 주된 사무소에 비치해야 하는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 각종 자료의 표지와 내지 한 장씩이다.
해산된 노조 15곳을 제외한 최종 점검 대상은 319곳이다. 이 중 233곳(73.1%)가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를 일부 혹은 전부 미제출한 노조는 86곳(26.9%)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가맹 노조는 각각 32곳, 39곳이고, 미가맹 노조는 15곳이다. 자료 전체를 미제출한 곳은 8곳(한국노총 3곳, 민주노총 2곳, 미가맹 3곳)이다. 2주간의 시정기간 동안 자료 제출 노조는 지난달 15일 기준 120곳에서 233곳으로 크게 늘었다.
앞서 양대 노총은 정부의 회계장부 제출 요구를 월권이라고 비판하며 기본적인 서류 제출요구는 응하되, 표지 외에 구체적 정보 제출 요구를 거부하기로 했다.
“질서위반 행위 발생했다는
합리적 의심 없는데 현장조사 강행”
노동부는 “여러차례 시정기회를 부여했음에도 노동조합이 정부의 최소한의 요구도 이행하지 않았다”며 “노조법 27조 보고의무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항은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달 15일 5개 노조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를 진행한다. 양대 노총에는 21일 사전통지할 계획이다.
다음달 중순부터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근거한 현장조사도 진행한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 22조는 “행정청은 질서위반 행위가 발생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어 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소속 직원으로 하여금 당사자의 사무소 또는 영업소에 출입해 장부·서류 또는 그 밖의 물건을 검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장조사 불응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현장조사 과정에서 폭행·협박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노조법 27조에서 이야기하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은 노조법 14조에서 비치해야 하는 ‘재정에 관한 서류’와는 다른 것”이라며 “노조법 27조에 근거해 재정에 관한 서류를 보려는 것은 권한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질서위반 행위가 발생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때 행정청이 조사를 할 수 있는데, 노조 내부에 분쟁이 발생하거나, 횡령이나 그런 의심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조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계 21일 노동부 장관 직권남용 고발
양대 노총은 현장조사에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1990년대 초반 구 노조법상 업무조사권을 발동해 이를 거부한 노조에 대해 고발과 노조간부 구속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보복했던 정부의 노조 자주성 말살 시도가 연상된다”며 “부패세력으로 매도하고 노조혐오를 조장하려는 정부의 불순한 의도라면 (내부자료 공개에) 절대 응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현장조사는 강압적인 형태로 진행할 수 없다”며 “현장조사를 예고할 경우 조사 대상과 목적이나 일정을 확인 후 거절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정했다. 노조가 현장조사를 거부하면 압수수색 영장 없이 강제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노동계 주장이다.
양대 노총은 21일 이정식 노동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동고발하고, 과태료 부과 처분에 대해서도 법률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과태료 처분을 받은 노조가 노동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하면, 노동부가 법원에 이를 통보해 과태료 재판이 개시된다. 노조가 이의신청하면 과태료 처분 효력이 상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