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정부 지침과 달리 운영되는 지방자치단체 노동자종합복지관에 시정을 권고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노동계가 중심이 돼 위탁운영하고 있는 노동자복지관이 노동자 복지와 무관한 목적·용도로 사용된다는 감사원과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노조의 불법·부당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칼을 빼든 시점에서 노조 흠집내기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국 노동자복지관 120곳 실태조사
“금지된 산별연맹 입주, 사무실 너무 많아”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노동부에서 전국에 운영 중인 근로자종합복지관 102곳을 실태조사한 결과 절반가량이 정부지침과 달리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국비지원 노동자복지관 72곳 중 34곳이 노동부의 ‘노동복지회관 및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지침’을 위반했다. 27곳은 운영지침상 입주가 제한된 산별연맹 사무실이 입주했고, 16곳은 연면적 대비 사무실 비중이 15%를 초과했다.
복지관을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광고회사·건설회사 등이 입주한 곳도 10곳이라고 덧붙였다. 취재에 따르면 A복지관 위탁운영업체는 건물이 노후화해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자 울며 겨자먹기로 임대사업을 시작했고, 해당 지자체도 이를 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가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해 불법 임대사업을 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국비 지원 없이 지자체가 건립·운영하는 복지관 30곳 중 20곳도 산별연맹이 입주해 사무실을 사용하거나, 연면적 대비 사무실 비중 15%를 초과해 운영상 문제가 있다고 봤다.
노동부는 운영지침을 위반하거나 법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 중인 복지관, 해당 자치단체에 시정을 권고할 계획이다. 근로복지기본법도 개정해 자치단체가 ‘일반 근로자의 공공복지 증진’이라는 취지에 맞게 복지관을 운영하도록 의무를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매해 정기감독할 땐 뭐하다가…
그런데 중앙정부의 국고보조금 지원이 없이 지자체가 건립·운영하는 노동자종합복지관은 원칙적으로 정부 운영지침의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운영지침을 무리하게 적용해 ‘문제’ ‘위반’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노조 때리기’의 일환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전국 102곳 노동자종합복지관 중 양대 노총이 위탁 운영하는 곳이 59개에 이르고, 노조에 국비를 지원하는 것은 정부가 노조에 회계장부를 들여다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주요 근거였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시점도 석연찮다. 노동부는 실태조사 배경으로 2020년 감사원 지적을 언급했다. 그해 감사원은 ‘서울특별시 기관운영 감사’에서 노동자복지관이 특정 노조 사무실로 인용되고 있다며 건립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에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권기섭 차관은 “감사원이 노동부에 (근로자복지관의) 합리적 운영 방안에 대한 역할을 요구했다”며 “지난해 근로자복지관에 대한 전체 운영실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이행계획을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매해 정기·감독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정부 운영지침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복지관 운영실태 전반에 대해 지자체장과 협조해 연 1회 이상 정기검검을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에 수시로 지도·점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매년 노동자복지관을 점검해 왔다.
양대 노총 “사실 왜곡, 노조 망신 주기”
노동부도 “정부 지침 꼭 따를 필요 없어” 인정
민주노총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사용으로 지적한 사례는 정부기준과 지방정부 보조금 사업 운영기준이 통일되지 않은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총연합단체가 정부의 재산을 사적 사용하는 양 호도하는 것은 부당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수십년간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전국적으로 한 번에 조사해 꼬투리 잡아 노조를 망신 주려는 행위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권기섭 차관은 “법적으로 (정부) 운영지침을 꼭 따라야 할 필요성은 없다”면서도 “(지자체가 운영하는 복지관의 경우) 조례를 제정해서 자치단체가 스스로 (운영)하는 것이 좋다.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경우 근로복지기본법의 취지를 볼 때 운영지침을 반드시 준수해야 되는 업무는 아니지만 운영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가 위탁운영하는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의 올해 예산을 70% 가까이 삭감했다. 복지관에 민주노총이 공짜사무실로 이용하는 등 사유화하고 있다는 이유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노동자복지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처리했다. 서울시노동자복지관과 강북노동자복지관 운영단체에게 공간사용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노동자복지관과 강북노동자복지관을 위탁운영하는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와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9월부터 사용료를 내거나 건물에서 나와야 하는 처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