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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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2,118회 작성일 19-07-24본문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
핵심적인 문제는 제도화되지 않은 노사관계
대담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넘쳐난다. 심지어 노사관계가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말로 우리나라 노사관계에는 문제가 있는 걸까?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참여와혁신>은 창간 15주년을 맞아 노동 분야의 대표적인 석학 두 분을 모시고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노동과 관련된 광범위한 분야를 주제로 진행됐다. 대담은 <참여와혁신> 사무실에서 하승립 편집인의 사회로 진행됐다.
기술진보의 성과 어떻게 활용할지 정치적 결정이 중요하다
사회 : 최근 노동과 관련하여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주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 혹은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일자리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불가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물질적 토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술 발전의 시대에 노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 AI나 디지털 기술 확산을 공포스럽게 대하게 되잖아요. 대량의 일자리 파괴가 전망되고 있죠. 근데 진보의 역사는 사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에요. 노동해방이라는 게 ‘노동의 해방’이 아니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기술진보가 그렇게 나타났다는 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건데, 생산성이 높아지면 근로시간이 대폭 단축되고 경제적 필요에 의한 노동의 양은 그만큼 주는 게 정상적인 거죠. 그걸 가능하게 해주니까.
근데 그게 그렇게 와 닿지 않고 오히려 일자리를 대체해서 대량 실업을 유발할 거라고 나타나는 건 기술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그 사회의 정치적 결정이나 사회제도에 따라서 기술진보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 거냐, 이게 정치적 결정이란 말이죠. 그래서 단순히 일자리가 50%가 파괴될 거다, 50만 개가 사라질 거라고 이야기하는 건 기술진보의 성과,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그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 없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는 것 같아서 맞지 않다고 봅니다.
1930년대에 케인스가 짧은 에세이를 하나 썼는데, 그 에세이에서 100년 후, 2030년쯤 되면 소득이 8배쯤 늘어나고, 근로시간은 주15시간이면 될 거라고 예측을 했어요. 그게 농담처럼 한 얘기가 아니고 그 당시의 경제 성장 속도나 선진국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야말로 인간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경제활동에 속박 받는 시간은 대폭 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거죠. 소득이 그만큼 늘 거라고 예측했는데 소득은 늘었어요. 8배 정도 늘어나는 속도로 가고 있죠.
문제는 근로시간인데, 그건 정치적 결정이잖아요. 사회의 부를 어떤 식으로 결정할 것이냐의 문젠데, 그 부분에서는 아직도 40시간에 매달려서 52시간 하느니 어쩌느니 이러고 있는 겁니다. 기술적 수준으로는 근로시간을 정말 반으로 줄여도 될 정도의 사회가 가까운 장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 사회의 조직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일 중심의 생활이라는 것이 고정관념처럼 우리한테 박혀 있는데, 그걸 뛰어넘는 상상력과 사회조직 원리를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최근에 경제학자들이 20명 정도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다들 일자리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초기 AI를 연구하던 연구자, 한국당 원로인데요, 그 사람이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를 교수들 중에는 경제학자들이 제일 먼저 대체될 겁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우리는 뭐 먹고 사느냐고 하니까 노시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이러는 거예요. 우리사회에서 기술이나 새로운 무인 자동차, IoT 같은 것들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는 건 달리 이야기하면 노동으로부터 해방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어요. 기술진보를 어떤 식으로 사회가 소비할 것인가, 이건 정치적 결정의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 : 거의 130년 전에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했던 시위가 세계노동절의 유래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술도 크게 진보했고 임금수준도 크게 올랐는데 왜 노동시간은 거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요?
최영기 : 그럴 수 있죠. 인간의 욕망을 불가피한 절대적 욕망, 필수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욕망의 영역과, 상대적 욕망, 남하고 비교했을 때 얼마나 더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절대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는 지금 기술 수준 가지고 넘쳐나지만, 사회의 워킹 메커니즘은 인간의 사회생활 속에서 표출되는 상대적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나가면서 돌아가는 측면이 있겠죠.
근데 거기에 대한 반성으로 나오는 게, 한 사회가 변할 때 한꺼번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지는 않지만 주변에서부터 서서히 변해간단 말이죠. 소위 환경주의자들의 자연주의 삶의 방식이라든가 덜 먹고 덜 쓰고 좀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리자고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데서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집단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건 속도가 늦지만, 예컨대 8시간 노동시간 속에 아예 안 들어오는 사람들의 비중이 예전에 비해서 늘어났다고 봐야죠. 옛날 산업화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구조 속에 묶여 있었다면, 지금은 그 구조에서도 벗어나거나 반쯤 걸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것이죠. 어떻게 보면 기술진보의 혜택이 그런 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4차 산업혁명, 사회혁신과 결부시켜야
사회 : 독일의 경우에는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이 함께 논의되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독일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요.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 그 전에 원장님 말씀 중에서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정치적 결정이라는 건 뭐냐면, 기술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느냐,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씀이에요.
보통 우리가 기술결정론을 비판하는데 우리의 정책적 역량을 알아야 기술결정론을 비판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산업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지금 전기차 생산, 친환경차 생산이 일자리를 줄인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자동차산업 전체로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건 완성차 위주의 생각일 수 있어요. 부품사의 경우 과거에 내연기관을 생산하던 부품사는 줄어들지만 전기전장은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렇게 보면 산업 전체로는 증감을 파악하기 힘들어요. 이동은 분명히 일어나는 것 같아요. 과거 기계가공에서 전기전자로 바뀌는데, 이걸 빨리 캐치해서 직업교육을 통해 숙련화한다거나 하는 정책적 결정이 기술혁신에 적응하고 우리사회에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역량, 정책적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 4.0은 전체적인 4차 산업혁명을 포괄하는 개념이 아니라 제조업 중심입니다. 인더스트리 4.0이 나오게 된 배경이 뭐냐면, 90년도에 경기가 침체되면서 새로운 경제 활성화를 어떻게 해나갈까를 고민하면서 강점을 더 강화시키는 거였습니다. 독일의 제조업이 강점인데 그걸 강화시키자는 거죠. 그래서 그 전에 상당히 이야기가 많이 됐던 ICT산업, 즉 정보통신기술을 제조업에 연결시키면 훨씬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들어간 겁니다. 그러다가 2008년, 2009년도에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독일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이 올바르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해요. 금융산업으로 들어갔더니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정되고 탄탄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독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중국 전부 다 제조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게 되죠.
인더스트리 4.0은 따지고 보면 기존의 생산 기술에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하는 건데, 여기서 비판을 받은 게 뭐냐면 사회적으로 그러한 기술적 관점만 가지고 들어가서는 생산성 향상이 안 된다, 그걸 움직이는 건 사람인데 작업자, 사람들에 대한 숙련과 역량이 같이 결부되지 않으면 기술이 가지고 있는 생산성 향상의 잠재력을 발휘시키지 못한다는 관점의 비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혁신과 함께 노동의 혁신, 조직적 혁신, 교육혁신, 노사관계 혁신, 보통 사회적 혁신이라고 부르는데 기술적 혁신과 사회적 혁신을 결부시키는 것이 인더스트리 4.0하고 노동4.0이라는 표현으로 나오게 된 것이죠. 우리도 4차 산업혁명이 기술적 관점으로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사회적 혁신으로 결부시킬지 구체화시키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기 결정에 입각한 노동과정일 때 만족
사회 : 현재의 노동은 결국 일터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구조로 가 있는데 그렇다면 즐겁게 행복하게 노동한다는 게 뭘지, 우리 사회에서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각 주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영기 : 본질적인 문제를 따지자면 소위 노동소외론에 입각해보면 산업시대에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소외노동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일터 내지는 노동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건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소외론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거죠. 일터에서 자아실현이냐 자아상실이냐 이런 논란도 있는데 그런 전제가 깔려 있죠. 노동에서 만족을 얻는다기보다는 그런 소외노동과 구분되는 일터 밖의 활동,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과정에서의 노동이 아니고 거기서 벗어난 자기 선택에 의한 활동, 그걸 노동이라고 할지, 액티비티(Activity)라고 할지 표현이 적당하지는 않지만 소외론에 입각해보면 자기 결정에 입각한 노동과정일 때 만족감을 느낀다는 거잖아요. 그런 기준으로 보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밖에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일을 통한 만족을 얻는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근데 그거는 너무 철학적인 얘기고, 우리가 보통 어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현대사회라는 게 결국 일을 통해서 사회관계가 맺어지는 거잖아요. 자기를 실현하는 방법이 주어진 노동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일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하고 거기서 사회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데, 경쟁이 너무 격화되는 것 같다는 겁니다. 경쟁이 격화되고 금융적 통제나 이런 것들이 점점 더 노동과정을 압박해 오는데, 금융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노동 간의 관계가 굉장히 치열한 경쟁과정이고, 평가도 굉장히 엄격하게 이루어지다보니까 노동과정에서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기업들이 그래도 한동안 인재경영이니, 사람중심경영이니 했는데, 갈수록 노동의 인간화 주장이 힘을 잃는 것 같습니다. 여러 시도들이 있었잖아요. 스웨덴의 우데발라니 새턴 공장 같은 이상적인 노동실험, 노동의 인간화 프로젝트들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요.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사 파트너십에 입각한 노동과정의 설계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경쟁관계 속에 들어갔을 때 두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맞추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겁니다. 지금은 노동의 인간화 프로젝트라는 게 별로 그렇게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게 되어버렸다고 봅니다. AI나 또 다른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노동과정의 혁신, 제조업 혁신이 이루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의 인간화나 일터에서의 행복을 향상시키기 위한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으로 보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굳이 설명하자면 세계화와 디지털 진보가 되면서 경쟁의 범위가 뭐 굉장히 확대됐고, 금융의 기업 지배가 훨씬 더 강화됐기 때문에 노동과정에서의 인간화라는 프로젝트가, 그 가치가 예전만큼 지켜지기 어려운 환경으로 빠져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문호 : 어떻게 행복을 느끼느냐고요? 힘든 문젠데.(웃음) 일자리에서 행복을 못 느끼게 되면 노동은 자꾸 도구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노동은 힘들어 죽겠으니 나는 노동을 통해서 돈만 벌면 된다는 거죠. 그래서 노동 외에 여가 등에 집중하게 됩니다. 향락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현상이죠. 중요한 것은 노동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노동의 인간화인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지금까지 노동의 소외를 가져온 현상이 구상과 실행의 분리라는 겁니다. 내가 계획해서 내가 일을 하게 되면, 이를테면 아직까지도 잘 되는 직업이 예술가잖아요. 그들은 일은 힘들지만 행복감을 느낍니다. 성과를 낼 수 있고. 근데 생산과정이라든가 직업 세계에서는 분리가 돼서 계획 단계는 관리자가 하고, 실행은 노동자가 하는 거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거든요. 어렵지만 이것을 줄여나가는 것, 다른 식으로 말하면 자율성을 주는 것, 내가 기획하고, 내 노동과정을 내가 만들어 나가는 자율성을 주는 과정이 확대되면 행복감이 늘어날 여지가 크죠.
과거에 그걸 막은 게 테일러리즘이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기술발전과 함께 탈테일러리즘, 탈포디즘의 여지가 많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그것을 활용했을 때 과연 생산성이 높아지는가에 달려 있겠지만, 그런 쪽으로 해나가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안 된 부분들이 있죠.
그런데 서구의 논쟁에서도 노동의 인간화 다음이 힘들다는 겁니다. 힘들다는 건 경쟁력 문제거든요.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70~80년대 실험을 했는데 자꾸 안 되고, 다른 비인간화 쪽이 경쟁력이 세지고 비용도 절감되고. 그래서 기업에서는 도입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그럼 포기할 것인가? 노동의 인간화 쪽에서 문제 삼는 건 뭐냐면 시스템이에요. 그러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노동의 인간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인류의 가치라고 본다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거죠.
최영기 : 긍정적인 요소일 수도 있는 건 요즘에 그 구글이나 페이스북, 롤 게임업체 같이 굉장히 창의적인 활동을 요구하는 회사들에서는 작업 과정에 대한 통제를 거의 안 한다는 거죠. 완전히 자율적으로 맡겨놓고, 사무실도 여기가 카페인지, 휴식공간인지 모르게 펍도 있고, 당구장도 있어요. 노동의 내용이 바뀌면서 작업의 지휘감독이라는 의미가 없어지고, 지식경제 하에서는 그게 생산적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고 웬만한 매뉴얼은 AI나 로봇한테 맡기고 창조적인 노동은 자유로운 작업 과정을 통해서 노동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례들이 조금씩 늘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에 산업화 시대 때 소위 일반 시스템 하에서의 노동소외와는 다른 양상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술진보와 함께 노동과정도 변해가기 때문에.
거기서는 역시 근로시간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데 8시간, 9 to 6, 이렇게는 어렵다는 말이죠. 4시간을 일하든, 3시간을 일하든, 어떤 때는 24시간을 일하든 굉장히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근로시간이 줄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노동에서의 행복이라는 건 아주 이상적으로 보면 제로 워크에 도달했을 때죠. 제로 워크에 도달하면 나머지는 뭐할 거냐. 그땐 새롭게 조직된, 지금도 보면 기업조직이 있고 비영리단체 조직 같은 자율조직들이 있잖아요. 자기가 경제적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면 ‘너 기업가서 활동할래?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비영리단체 가서 활동할래?’ 하면 비영리단체 가서 활동할 때 더 재밌게 느낄 수 있잖아요.
근데 기업에서 주어지는 노동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품화 과정 속에 들어가는 거기 때문에 거기서 느끼는 압박감과 거기서 느끼는 실현감은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 기업에서의 노동과정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일이 확대되는 게 미래의 유토피아적인 노동이 아니냐 하는 거죠. 여기서의 일은 기업에서의 노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거니까요. 기업에서의 노동은 제로 워크로 가고, 이쪽은 자기 선택 하에서 비영리활동을 하고. 아주 이상적으로 이야기하면(웃음).
일터에서의 행복과 생산성은 합치될 수 있다
사회 : 노동 도구주의를 극복하고 노동하는 것이 그나마 지금보다 덜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요?
이문호 : 많죠. 아주 결정적이고. 지금까지 노동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사실 공동책임이에요. 물론 누가 더 책임이 큰지 따지면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지금 일터혁신도 따지고 보면 ·그 얘기에요. 조금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죠. 목표 자체가 노동강도 높여서 생산성만 높이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일정한 부분에서 노동의 인간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노동조합이 이걸 봐야 해요. 여지가 있으면 넓혀 가야 하거든요.
근데 지금 노동조합이 이런 질적 관점에는 거의 관심이 없거나 도외시해버리고, 양적 관점으로 자꾸 들어가 버려요. 교섭도 양적 교섭만 하는 것이죠. 임금, 고용안정도 사실 일자리 몇 개 창출할 거냐 하는 양적 교섭이에요. 행복이라는 건 질적 관점인데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터혁신이라든가 많이 있잖아요. 가서 보면 거기에 형성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나 지표들 중에 확대시켜서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노조가 이 부분에서 역할을 못 하고 있어요. 이건 노조가 책임져야죠. 노동자가 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그걸 도외시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술혁신도 이쪽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요. 기술혁신으로 훨씬 더 인간의 역량을 높일 수 있고, 인간이 좀 더 재밌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쪽 부분을 도외시하고 있는 거죠.
사회 : 그러면 여기에서 노사정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사용자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요?
이문호 : 사용자는 목적이 이윤, 생산성이고, 기술도 마찬가지에요. 기술적 가능성이 있다고 무조건 들오는 건 아니잖아요. 기술이 들어와서 경쟁력이 높고 생산성이 높아져야 들어올 테니까. 그러면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야 하는데 행복하게 만들어줬더니 경쟁력이 높아졌다,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게 있으면 만들어 나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기업 측은 신뢰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투자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당장 조직혁신이나 기술혁신에 돈이 들어가고, 그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 시간이 걸리는데 이걸 못 참죠. 왜냐면 불안하니까. 2~3개월 하다가 안 되면 줄이는 거죠. 그리고 주주자본주의에서는 1년 정도 하다가 성과가 안 나오면 아웃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행복하게 느끼는 일터, 노동의 인간화에 대한 실험을 근본적으로 못하게 만들어요. 크게 보면 자본주의 구조도 그렇고, 기업 내에서도 이런 실험 내지는 관점을 확대시킬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어요. 기업가들 의식이 이 두 가지, 행복과 경쟁력 내지 생산성이 충분히 합치될 수 있다는 관점 속에서 좀 더 적극적인 전략 또는 실험을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 그렇다면 정부는 일터혁신 같은 프로그램 지원이 가능할까요?
이문호 : 그렇죠. 일터혁신 많이 하잖아요. 근데 문제가 형식적으로 하는 게 많다는 거예요. 그런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제대로 하려고 해도 불확실성이 있어요. 정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면서 경쟁력이 생길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데, 그러면 투자를 못해요. 그런 걸 정부가 투자해줘야죠. 1~2년 했더니 되더라는 증명이 있으면 스스로 알아서 하게 돼요. 초기 단계에서 불확실성 때문에 멈칫할 때 정부가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죠. 근데 지금은 스마트 공장도 마찬가지인데, 돈 받기 위해서 하는 게 많아요. 이건 아니죠.
최영기 : 스마트 공장 같은 것도 정부가 한 기업에 2억씩인가요? 지원하기로 되어 있는데 주로 디지털화에 대한 투자, 그러니까 기술 투자에 지원을 해주는 거지, 그게 종사자들을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도록 변환시키거나 그 사람들의 직업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투자는 아니에요. 이건 개념 속에 없는 겁니다. 스마트 공장이라고 하면서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스마트워커가 되게 하기 위해 투자한다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근데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 개념을 우리 제조업에 적용한다고 했을 때, 결국 인더스트리 4.0은 제조업에 디지털 기술을 입히는 거란 말이에요. 스마트 공장이 그런 개념으로 하는 건데, 거기에 노동에 대한 관점과 투자가 없다는 게 굉장히 맹점이에요.
노동과정에서의 행복에 대해 ILO가 제시했던 디센트 워크(Decent Work) 개념이 있어요. 좋은 일자리라고 쉽게 표현을 했지만, ILO가 십 수 년 전에 디센트 워크라는 걸 ILO의 새로운 방향으로 정해서, 세계화 시대에 노동과정이 너무 시달린다, 시달리니까 노동과정의 기본 가치로 디센트 워크를 만들어가자는 거예요. 거기에 4가지 조건이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산업화 시대 때 내놓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던 노동3권이 보장되고, 산업안전, 건강과 안전,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들어가는 게 사회적 대화 개념이에요. 꼭 교섭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협의와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장 질서, 예를 들면 교섭이 아닌 대화 과정으로 경영참여 등이 있겠죠. 그런 것들은 적어도 모든 노동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감이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고, 실제 정책화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그걸 실용적인 단계로 이야기한다면 디센트 워크가 비슷한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터혁신이나 스마트 공장에서도 디센트 워크라는 관점으로 판단해보는 것도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양극화를 초래하는 노사관계 시스템이 문제다
사회 : 한국의 노사관계를 두고 어느 당사자에게 물어봐도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라는 인식보다는 그냥 문제라는 거예요. 대기업 노무 담당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래서 어떡하자는 거냐, 심지어는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여기서 근원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한국의 노사관계가 진짜 문제인 건지,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뭐가 문제인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영기 : 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전국 차원의 노사관계가 타협적인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전국 차원에서 노사정의 신뢰와 타협, 협력이 구조화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안 들어간 것이 구체적인 증거이고, 연례적으로 이루어지는 민주노총 주도의 집회,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상급 노동단체들의 단체행동이 우리 노사관계의 마지막 숙제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기업단위 노사관계는 어떤가 하면, 기업단위 노사관계만 잘라서 보면 굳이 그렇게 비정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상당수 기업들이 87년 이후에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타협적인 질서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연례적인 파업을 하고 있는 현대차가 어떻게 보면 예외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거기는 거기 나름대로 하나의 교섭 절차처럼 거치는 과정으로, 교섭 과정에서 파업했다고 해서 파국이 일거나 회사 경영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은 타협으로 가요. 기업 단위에서는 비교적 타협 질서가 잘 정착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얼마나 생산적이냐, 얼마나 협력적이냐, 이건 기업마다 편차가 있지만 사업장 단위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상급단체와 내셔널 센터로 오면 노사관계에 대해서 굉장한 불신이 있고, 뭔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상태에 아직 머물러 있거든요. 그걸 아주 단순화시켜서 이야기를 하면 민주노총이 아직까지 노사관계 질서 속에 제대로 들어와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사관계 질서라는 건 정해진 법과 제도적 절차에 따라서 자기의 요구를 주장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것인데, 그걸 거부하는 거라고 봅니다. 지금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나 대정부 관계에서의 태도를 보면 요구는 굉장히 많이 하지만 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협상에서 양보와 타협하는 걸 못한다고 봐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전국 차원에서의 노사관계가 안정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불법도 불사하고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만 성과라고 한다면 그 노사관계는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민주노총은 제도권 밖에 있는 거죠. 그게 우리나라 노사관계 문제에 현상적으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문호 : 우리 한국에서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원장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사회적 대화, 노사정 차원, 산별 차원, 기업별 차원으로 나눠서 보면 문제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마도 기업별 차원일 텐데, 다른 나라보다 노사관계가 얼마나 더 나쁜지는 지표상 비교하기 힘듭니다. 파업일수 같은 걸로 따질 수 있는데, 독일도 경고파업은 해마다 합니다. 공식적 파업은 상당히 힘들지만 3~4시간씩 하는 경고파업은 협상 앞두고 늘 하는데, 그런 것까지 따지면 우리가 얼마만큼 더 나쁜 거라고 보기는 힘들 겁니다.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의식 속에는 이런 것이 들어 있을 수 있어요. 쟤네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하고 안 들으면 문제 있는 거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노사관계가 분명히 대립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대립과 협력의 측면이 계속 반복되는 건데, 협상 전에는 대립적인 측면이 있고, 타협을 통해서 협약이 이루어지면 협력해서 지켜나가고, 그러다가 소멸되면 다시 대립적 관계로 요구하는 식으로 협력과 대립의 관계가 반복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반복되는 부분들이 당연하다고 느끼면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겠죠. 근데 한국에서 임원들이 계속 문제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이러한 당연한 과정을 생각 안 하고 무조건 회사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게 아닐까요.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가 현상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회사가 주도하는 대로 노조는 따라와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서 문제가 많다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영기 : 덧붙이자면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가 있어요.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기업별 노사관계잖아요. 87년 이후에 노동권을 확보해 나가는 데는 기업별 노사관계가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업별 체제가 노동운동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노동의 연대, 노동자의 연대나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는 공정성의 실현이 노동운동의 큰 가치라고 봤을 때, 97년 이후 기업별 노동조합의 교섭은 결과적으로 자기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자기 조합원들만의 임금근로조건 향상으로 나타나거든요. 꼭 그렇게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죠. 노동조합이 최선을 다해서 교섭력을 발휘하고 성과를 냈지만 그 교섭결과가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는 별로 보탬이 안 되는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격차를 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도 양극화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기업의 불공정거래가 아니라 노사관계 시스템이 초래한 양극화 문제를 기업별노조들이나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책임지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죠. 구조적으로 양극화를 촉발시키고 가속시키는 노사관계는 우리 노사관계 시스템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쉽게 산별체제로 가고, 협약적용률을 확대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이건 상당히 실현 가능성이 낮은 문제이기 때문에 노사정이 다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기업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니까 비정규직이나 외주하청 문제가 다 부담으로 돌아오잖아요. 지속가능성 문제로 봤을 때 시스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사정 모두가 문제로 인식하고 실행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제조업 위기, 정부의 역할이 우선이다
사회 : 저희가 이번에 한국의 제조업 위기 특집을 다루면서 기자들이 울산에 가서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노사 당사자들 만났는데, 제조업이 위기라는 것에는 다들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정부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입니다. 위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노사 당사자들은 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의견도 제시하지 못하고, 의견을 모으지도 못하는 걸까요?
이문호 : 일단 정부에 해결책을 바란다는 건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이 산업정책에 대한 의존성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봅니다. 물론, 90년 IMF 이후에는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에 요구하는 걸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업정책은 필요한 거잖아요. 그리고 산업정책의 상실이 IMF 이후의 큰 문제이기도 했고요. 여기서 정부가 산업정책적 패러다임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제조업이 위기면 제조업 패러다임의 변화, 정책적 변화를 가지고 논쟁이 됐으면 좋겠는데 최저임금 가지고 논쟁이 돼버리잖아요. 최저임금 문제가 한국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문제처럼 된 건 큰 문제라고 봐요. 일단 정부의 산업정책적 패러다임에 대한 제시가 되면 노사 간에 할 일이 생기겠죠. 시장에 맡겨서 알아서 하라는 건 힘들 것 같아요. 특히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패러다임을 형성해서 나갈 수도 있지만, 정부가 산업정책 역량이 있어서 제시하면 거기서 노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영기 : 정부의 우선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100% 동의하고요. 노동조합도 고민은 해야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에도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게 경제단체라고 봐요. 유럽에서 노사관계가 업종차원이나 지역차원에서 포괄적인 이슈들에 대해 협의하고 교섭도 이루어지는 데에는 경제단체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경제단체들은 거의 대정부 로비 수준에 머물러 있고, 노사관계나 인적자원 관리에는 전문 인력도 없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동안에 역할을 했던 전경련이나 경총도 산업정책적, 중장기적 고용 같은 문제에 대해서 자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방기해왔죠. 정부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관행이 되어 있지만, 갈수록 대규모 업종 전환이나 구조조정이 벌어진다고 했을 때 현장 밀착적인 대책이나 대정부 정책 협의를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건 경제단체라고 보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경제단체들도 과거의 대정부 로비 기구에서 탈피하고 재계 리더들이 다시 산업에서 리더십을 확립해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경제단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정부와 전략적 대화를 통해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오래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정부와 재계 간의 대화가 훨씬 더 심도 있게 발전돼야 한다고 봐요. 과거 식의 정경유착이 아니고 이제는 스스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왔어요. 정부가 과거처럼 여러 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지만 못지않게 경제단체들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 부연을 하자면, 전경련은 이념적 측면에만 집중되고, 경총은 노사관계적 측면에만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한국의 경제단체가 경제적인 정책 기조를 만들어내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느냐 이 문제도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최영기 : 그렇습니다. 지금 그런 역량이 굉장히 떨어지죠. 심지어 박근혜 정부에서 전경련은 우파단체를 지원하는 고리 역할을 해왔던 것 아니에요. 정치조직화해서 반쯤 재야단체처럼 활동을 했는데 완전히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봐요. 경총도 마찬가지에요. 싸움꾼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그러다 보니까 민주노총도 전투적인 기조를 못 버리는 데에는 굉장히 전근대적인 사측의 대응에 맞상대하다보니까 그런 측면도 있는 거죠. 쌍방과실입니다. 노사관계는 다 쌍방과실이죠. 엄청 착한 기업인이 있는데 엄청 악한 노동조합이 계속 있기는 어렵잖아요.
노사가 교육훈련 필요성 공감하면 같이 할 수 있는 일 많다
사회 :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면서 국내에는 산업만 있고 노동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업무만 익히면 되지 교육을 많이 한다는 거 자체가 도움이 안 된다고 인식하고, 노동자 개인도 승진을 위한 교육 정도 외에는 교육훈련이 굳이 필요하냐고 합니다. 숙련을 통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숙련도가 중요한 문제일 텐데 우리사회에서 노사는 교육훈련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을 걸까요?
이문호 : 교육훈련이 필요 없다고 느끼면 그 회사는 혁신을 안 하고, 그냥 머물러 있는 회사입니다. 이런 회사는 얼마 못 가요. 이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거죠. 혁신을 위해서는 교육훈련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자꾸 기술이 변화되고 조직이 혁신되는데, 거기에 적응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필요성을 느끼고, 회사는 회사대로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느껴야 합니다. 만약 현장에서 이걸 안 느끼고 있으면 위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변화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죠. 혁신을 하는 회사는 노사 모두가 필요성을 느껴요. 거기서 혁신을 하고 노사가 교육훈련 필요성을 느끼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노사는 위기에 빠져 대립적으로 가버리는 악순환이 일어나죠.
최영기 : 노동조합 역할도 강조해야 할 듯합니다. 노동조합이 항상 노동자들한테 해줘야 할 것으로 임금복지만 생각하는데, 노동조합의 중요한 기능이 교육훈련 사업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기술개발 상황에서 고용안정 위해서도 그렇고, 당장 5~1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할 때도 대규모 은퇴시기에 들어간단 말이에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굉장히 우수한 인력이었다고 봅니다. 그들이 87년 노동운동도 주도했고, 한국의 산업화에 꽃을 피운 핵심 인력층이라고 보는데, 이들이 다 건강하고 아직 노동능력도 갖추고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고 은퇴해야 합니다. 전직훈련을 포함해서 은퇴를 위한 교육만 하더라도 회사가 해주면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조합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의 인력과 재원을 교육훈련에 투자해야 하는데 거의 그런 책임은 안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 교육훈련 내용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냐는 거죠. 시대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 내 교육훈련의 방향성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이문호 : 방향성은 내가 이야기하기는 힘들어요. 실질적으로 필요한 역량조사가 돼야 하기 때문이죠. 지금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역량을 교육한다고 할 때, 역량조사보다 외부에서 조사한 것으로 커리큘럼을 짜는데, 이건 안 맞을 수 있어요.
그리고 숙련이라는 게 직접적으로는 제조업으로 따지면 생산모델이에요. 개인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하더라도 아마 당분간은 대량생산 체제에서 못 벗어날 겁니다. 근데 우리 위치에서 맞는 생산모델이 있고, 어떠한 숙련이 필요한지, 어떤 기술이 들어오는지 생산모델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지금 커리큘럼을 보면 외국에서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외부에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역량이라고 해서 무슨 숙련, 무슨 숙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안 맞습니다. 실태조사를 통해 어떤 숙련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고, 교육 수행하는 전문기관들이 지역별, 산단별로 구성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 대기업은 그나마 교육훈련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노사정이 교육시간 할당제 도입 같은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중소기업 교육훈련을 지원할 방안은 어떤 것일까요?
최영기 : 중소기업들은 교육 패키지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니까 별도의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직능원 채창균 박사가 예전에 제안한 게 하나 있던데, 크게는 교육훈련 휴가 제도를 도입하는 건데 일종의 할당제 같은 거죠. 주변에서는 그게 너무 과감해서 실현성이 있겠느냐고 하지만, 채 박사는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이야기해요. 찔끔찔끔 해봐야 결국 중소기업의 타이트한 인력 관리의 부담을 뚫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정도의 과감한 발상이 아니면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죠. 덴마크에는 중소기업이 많은데, 그 나라에서는 그걸 시도한다는 것이죠. 거기서도 기업단위에서는 교육훈련 휴가 제도를 시행하기 어려우니까 국가가 아예 1년이든 얼마든 빼서 교육시켜서 다시 넣어주는 방식으로 한다는 거죠. 그렇게 100% 국가에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중소기업 교육훈련을 정상화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저도 동의해요.
사회적 대화로 모든 문제를 푸는 건 비효율적
사회 : 한 가지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 처음에 공약으로 제시한 건 많은데 한 게 없지 않느냐며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경영계에서는 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그리고 노사가 주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문호 : 현 정부에 들어서 노동정책을 상당부분 사회적 대화로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혼선이 빚어지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 큰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부분들, 예를 들어서 탄력근로제도 경사노위를 통해서 풀려고 하는데, 이게 비효율적이에요. 노사정이 합의하고, 그 합의가 국회로 넘어가서 또 한 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죠. 여기서 일단 방법론적으로 혼선이나 비효율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회적 대화에 정부가 조금 더 주도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노사 자율성으로 가져가기엔 조직률이 너무 낮고, 산별 노사관계도 안 되고 있으니까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도 사회적 대화가 실패한 적이 많아요. 특히 슈뢰더 때인데, 90년대 말에 실패했을 때 슈뢰더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중장기적으로 노동정책이 필요하다고 사회적 동의를 받았을 때는 이해당사자들한테 동의를 구하는 것보다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전부 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는 거죠. 사회적 대화의 실패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정부가 너무 사회적 대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노동정책이 지지부진한 거 아니냐는 겁니다. 양극화 문제라든가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으로 정당성이 있다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영기 : 이 정부 2년 동안 정부가 정말 진정성을 가지고 공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과도 있어요.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무리했던 것을 바로잡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손을 댄 거잖아요. 거기까진 좋았는데, 지금 굉장히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 탄력근로하고 ILO 법 개정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풀려고 하면서 노사정 관계가 삐걱거린 거잖아요. 탄력근로나 최저임금 문제는 법 개정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더 어렵게 했습니다. 지금은 민주노총 없이 출발한 경사노위조차 멈춘 상태잖아요.
과거에도 몇 차례 경험했는데 법 개정 문제를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얹는 순간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계의 특성상 패키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타협을 위해서 노동계가 양보한 건 반드시 욕을 먹게 되어 있어요.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이 항상 뭐했다고 지탄하고, 자기들은 타협의 부담을 안 지는 것이죠. 그래서 우선 기술적인 문제로 법을 타협 의제로 올렸던 것은 이 정부의 정책적 실수입니다. 그건 빨리 치우는 게 낫습니다.
지금은 본래 이 정부가 하려고 했던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 의제를 논의해야 합니다. 경사노위를 보면 사회안전망위원회라든가 양극화, 고용 등 흩어져 있어요. 그걸 그냥 노사정 간의 의제조정 차원에서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탄력근로나 ILO 핵심협약에 대타협을 요청하듯이 그 정도의 정치적 비중과 의제를 실어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하자, 가장 중요한 이슈 5가지를 뽑아서 타협을 해보자, 이렇게 먼저 대통령이 제안하고 의제를 줘야 한다고 봐요.
거기에서는 정부가 할 일이 굉장히 많겠지만 그동안 이루어져 왔던 정부와 노동계의 딜 방식이 아니라, 노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노사가 기업 차원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타협 의제로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임금개혁, 교육훈련, 경영참여, 원-하청 노동자들 간의 문제들처럼 노사가 처리해야 할 문제를 의제로 올려서 타협을 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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