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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기본협약, 법 개정해야 비준 가능하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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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933회 작성일 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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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기본협약, 법 개정해야 비준 가능하다는 '거짓말'
111호 협약 “입법사항 없다”더니 비준 후 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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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린 바르가(Corinne Vargha) ILO 국제노동기준국장이 지난 9일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영상 발표문을 통해 ILO 기본협약 선 비준을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동영상 캡처>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작업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2일 국회 비준동의와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하면서부터다. 국내법을 먼저 개정한 뒤 비준하겠다는 종전 입장과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다.
반응은 엇갈린다.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는 기대 섞인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입법 핑계를 대고 있다”며 신속한 비준을 촉구하는 쪽도 있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은 “정부가 노동계에 밀려 선 비준을 밀어붙인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 비준이 됐든, 국회 비준동의가 됐든 빠른 비준을 요구하는 쪽은 “입법이 비준의 전제조건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먼저 비준한 뒤 관련 법을 개정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협약 비준과 관련한 ILO 절차에 따른 것이다. 한 국가가 협약을 비준하면 1년 뒤 국내법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 안에 법을 개정하면 된다.
기회는 또 있다. 기본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3년마다 ILO에 협약 이행사항을 담은 정기보고서를 내야 한다. 정기보고서를 제출할 때까지 법과 제도를 바꾸면 된다.
회원국이 정기보고서를 내면 중립적인 전문가로 구성된 ‘협약·권고에 관한 전문가위원회’가 이를 검토한다.
전문가위가 협약 위반으로 분류한 사안 중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매년 열리는 ILO 총회 기준적용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한다.
노사정 3자 기구인 기준적용위는 총회 기간에 토론한 뒤 협약준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 해당 국가에 권고한다.
111호 기본협약 ‘입법 구멍’인 채 비준
실제 우리나라도 과거 비준한 협약과 관련해 이런 ILO 절차를 밟아 왔다.
한국이 ILO 기본협약 8개 중 비준한 것은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노동자 동일보수 협약(100호) △고용 및 직업상 차별대우 협약(111호) △취업 최저연령협약(138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 협약(182호)이다.
이 중 111호 협약은 21년 전인 1998년 비준했다. 당시 정부는 “입법사항이 없다”며 별도 법 개정이나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를 거쳐 바로 비준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111호 협약 이행상황은 여러 차례 국제사회 도마에 오르게 된다. ILO 기준적용위 안건에 오른 것만 네 차례고, 세 번의 권고를 받았다.
111호 협약에 따르면 인종·피부색·성별·종교·정치적 견해·출신국·사회적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을 없애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9년·2013년·2015년 총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권을 보장하라는 기준적용위 권고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2003년 8월 외국인 고용을 원활하게 하고 이주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을 제정해 1년 뒤 시행했다.
98년 협약 비준 당시에는 관련법을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뒤늦게 만든 법도 기준적용위 권고를 받을 정도로 법이 불비했다.
한국 정부는 법을 개정해 2010년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일부 완화했는데도 이후 두 차례나 더 기준적용위 권고를 받았다.
비정규 노동자가 차별시정 신청을 할 때 노조도 차별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도 2009년 기준적용위에서 채택됐다.
지금까지도 노조는 차별시정 신청권이 없다. 대신 노동부는 비정규 노동자 차별행위에 처벌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차별시정 기간 확대를 시행했다.
2013년 ILO 총회에서는 교사들이 시국선언 같은 방법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힌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조항도 111호 협약 위반이라는 기준적용위 권고가 나왔다. 협약·권고 전문가위는 올해 2월 교사가 아닌 국가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111호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다음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총회 기준적용위 안건에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100호 협약의 경우 기준적용위 권고가 나온 적은 없지만 전문가위는 2013년 “남녀가 온전히 다른 성격의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동일가치로 평가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동일임금을 보장받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문화한 것만으로는 협약을 충족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87·98호 협약도 ‘비준 뒤 제도보완’ 불 보듯 뻔해
정부가 비준을 준비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 역시 111호와 같은 운명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지난달 발표한 공익위원안을 중심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익위원안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활동 보장, 공무원의 노조가입시 직급제한 폐지, 소방공무원 노조가입 허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업별노조에서는 해고자나 실업자가 임원이나 대의원이 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공익위원들은 “기업별노조가 다수인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87호 협약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공익위원안은 특수고용 노동자 노조활동 보장 방안을 장기적인 과제로 미뤘는데,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은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수차례 권고한 사안이다.
공익위원안에는 노동계가 요구해 온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폐지가 빠져 있다. 공익위원들은 장기과제로 돌렸다.
87호 협약은 단결권 관련 협약이지만, ILO는 쟁의행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로 보고 있다.
“평화적인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말라”는 결사의 자유위 권고가 잇따라 나온 배경이다.
87·98호 협약과 관련해 공익위원안을 중심으로 관련법 개정이 이뤄져 비준한다고 가정해 보자. 111호 협약처럼 ILO 전문가위나 기준적용위 안건에 올라갈 사안이 적지 않은 것이다.
ILO는 국내법이 협약을 충족하지 못해도 비준기탁서를 받아들이게 돼 있다. 협약에 맞게 제도와 관행·판례를 바꾸는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를 포함해 노동계·전문가들도 “100% 입법한 뒤 ILO 협약을 비준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ILO 협약을 비준하기까지 ‘입법’이 우선되거나, 입법을 이유로 비준을 마냥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노조설립신고제를 허가제로 둔갑시킨 노조법 시행령 9조만 고쳐도 실업자나 해고자의 노조활동 보장에 도움이 된다”며 “정부는 입법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결자해지 자세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면서 비준서를 ILO에 기탁하거나 비준동의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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