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1천명 이상 조합원이 있는 노조에 노조 회계장부를 비치하고 보존하는지 점검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을 개정해 노조 회계감사원 자격과 선출방법, 재정상황 공표 방법과 시기 등을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도 만든다. 노조의 부정 감시에 노동부 행정력을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있다.
사문화된 노조법 27조, 노조 회계 감시 근거로 활용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브리핑를 열고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임금·근로시간 등 법·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노사의 의식·관행 개선을 제안했다”며 “노조의 불투명한 재정운영 관행이 지속되면 국민 신뢰와 지지를 잃게 되고 우리 사회와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도 높아진 사회적 위상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을 강화할 때”라며 “노조 재정 투명성 점검과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노조활동에 햇빛을 비춰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노조 재정 문제를 제기한 지 8일 만에 노동부 장관이 ‘총대’를 메는 모양새다.
노동부는 우선 조합원 1천명 이상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253곳을 대상으로 노조법 14조에 따른 재정 서류 비치와 보존의무 이행 여부를 내년 1월 말까지 점검한다. 점검 대상은 단위노조(201곳)부터 연맹(48곳), 총연맹(4곳)이다. 상급단체별로는 한국노총이 138곳으로 가장 많고 민주노총은 65곳, 전국노총 4곳, 대한노총 1곳, 미가맹 47곳이다.
노조법 14조는 노조의 회의록과 재정 장부와 서류를 사무실에 비치하고 3년간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부가 14조에 따른 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점검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노동부는 이달 29일 일괄적으로 점검 대상 노조에 ‘14조 서류 비치·보존 의무’ 관련 안내문을 발송하고 한 달간 자율점검기간을 부여할 예정이다. 점검기간 종료 후 노동당국은 노조의 점검 결과 보고요구서를 발송해 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점검 대상 노조는 ‘서류비치와 보존 여부에 대한 체크리스트’와 ‘사진 등 증빙자료’를 관할 행정관청에 10일 안에 제출해야 한다. 제출하지 않으면 노조법 27조 위반에 따른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한다.
해당 조항은 노조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내용이다. 노조법 26조에는 6개월마다 자체적으로 회계감사를 실시해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는 노조에 행정관청이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든 조항이다.
문제는 조합원의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는데도 노동부가 27조를 일괄적으로 노조에 점검을 지시하고, 점검 결과 제출을 요구하는 근거 조항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준에도 어긋나고 ‘행정력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올해 4월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87호 협약은 노사 단체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정부가 권리를 제한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협약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정례적인 연차 보고 외 ‘노조 재정 운용에 부정이 추정되거나 단체 회원이 부정을 신고한 경우’에만 조사 등의 행정조치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시행령으로 ‘노조 회계감사 강화’ 추진
윤 대통령, 노조 회계공시시스템 주문
정부는 시행령 개정도 추진한다. 이정한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노조법에 회계감사원을 두고 감사 결과를 공표하도록 했는데 하위법령에서 이를 구체화한 지점이 없다”며 “시행령을 개정해 감사원의 자격과 선출방법, 결산 결과 공표 방법과 시기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회계감사원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감사 결과 공표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도 추진한다. 최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 회계감사원 자격요건을 법적 자격 보유자로 명시하고 회계담당은 감사업무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동부는 내년 2월부터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만들어 운영한다. 부당노동행위·임금체불 등은 기존 홈페이지에 있는 신고센터를 활용하고 새로 만든 신고센터로 포괄임금 오·남용, 특정 노조 가입·탈퇴 강요, 재정 운영 결과 공개 거부, 휴면노조 등에 대한 신고를 받아 근로감독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정식 장관은 “최근 건설산업노조 조합비 횡령과 노조간부의 채용 개입 등 일부 노조 일탈로 전체 노조에 대한 국민 불신이 초래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일부 노조나 조합원 문제로 돌리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부정과 비리가 전체 노조의 문제라는 것으로, 최근 정부·여당이 노조를 ‘부패집단’으로 여론몰이하는 연장선상에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도 “노조가 노동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노 간 착취구조 타파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처럼 노조 회계공시시스템 구축 방안을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고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전했다. 노동부는 일정 규모 이상 노조의 회계감사 결과를 외부에 공표하는 방안을 담은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