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유의 탈을 쓴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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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928회 작성일 19-06-14본문
[칼럼] 공유의 탈을 쓴 약탈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요즘 노동현장에서 택시산업만큼 뜨거운 곳이 있을까. 개인택시 16만여대, 법인택시 8만여대, 그리고 이들 택시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를 포함해 많은 이들은 현재 택시산업을 마치 신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구시대 유물인 양 치부한다.
새로운 산업 출현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선은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산업을 막을 수 없다’는 정도인 것 같다.
심야에 택시를 잡지 못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형편없는 택시 서비스를 보면서도 반대할 수 있냐’고 필자를 일갈한다.
그런데 불편했던 택시 승차 경험이 곧장 ‘타다’나 ‘파파’ 같은 운송서비스 플랫폼 사업 출연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가 있을까.
불만족스런 서비스는 그 자체를 개선해서 풀 문제다. ‘승차거부에 대한 강력한 행정단속부터 현행 면허 대수 내에서 질 좋은 고급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이 먼저’라는 대안이 나온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가 눈감고 있지만 위와 같은 서비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등 관련 법률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와 같은 서비스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던 시절 제정된 법률로 현재 상황의 적법 여부를 해석하는 자체가 문제다.
수십 년 동안 다져 온 운송면허제도의 근간이 무너질 지경이다. 면허가 필요한 사업과 면허를 요구하지 않는 사업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나.
편법과 탈법도 법에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공유’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상품에 대한 환상을 걷어 내야 한다.
이들 서비스 등장 초기에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새로운 공유경제’라고 치켜세우는 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유경제가 아니라 ‘약탈경제’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 ‘앱 하나 잘 만들어서 얻는 불로소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공유’라는 그럴싸한 탈로 포장했지만, 결국엔 거대자본이 만든 또 하나의 허상, 대자본 독점의 다른 유형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다.
‘공유(共有)’의 본모습은 그런 게 아니다.
‘약탈’의 1차 대상은 기존 산업과 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다. 아마 가장 큰 약탈 대상은 공유산업에 새로이 진입할 노동자가 될 것이다.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물음은 단순하다. 화려한 공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가.
그러나 ‘노동자’라는 말도 사용하기 만만치 않다. 얼마 전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에서는 우버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시사점이 크다.
우버측의 상당한 로비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화려하기까지 한 ‘공유’의 배경에는 사실 노동자들(기그 노동자, 드라이버)의 희생이 있었다.
10년 넘은 우버가 수익을 얻었다는 뉴스는 없다. 얼마 전 주식시장 상장에도 사실상 실패를 보지 않았나.
그리고 잘못 수용된 그 최종 피해자는 노동자와 소비자에게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짐작건대 공유서비스가 남발하면 머지않아 서비스 가격이 올라가고 기업의 경쟁력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노동시장에서 선보이는 공유산업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딱 그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공유경제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신산업은 적어도 기존 산업과 노동(자)과 함께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100여년 전 자동차산업 등장처럼 수천년간 이어온 마차산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노동자의 삶을 나아지게 할 혁신이 있어야만 한다.
‘카카오’와 ‘타다’가 과연 이러한 기준을 만족하고 있는가?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택시 등 기존 산업의 저항을 불러왔고, 과연 한 세대 이상 위 산업이 노동자들과 함께 지속가능하겠는가에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있다.
마침 대통령이 핀란드 등 북유럽 3개국을 순방 중이다. 여기에는 타다 대표 등 스타트업 기업 대표자들이 동행하고 있다.
이른바 공유서비스 등 혁신산업이 크게 발달한 이들 나라에서 나름의 교훈을 얻겠다는 게 참여 이유라고 한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뉴스를 접하고 “과연 그런 구성으로 제대로 배워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했다. 인식이라는 게 각자의 입장에서 보기 마련이다.
공정한 관점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노사가 함께 갔어야 한다. 강신표 택시노련 위원장 같은 이들이 동행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곳 북유럽 선진국은 과연 진정한 모습의 공유경제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우리와 같은 노동경제 환경인지, 사회적 갈등은 없었는지, 그 해소 방법은 어떠했는지 대통령과 노사가 함께 보고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면 훨씬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적어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에 대한 ‘약탈’이 아닌 노동(자)과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공유’라는 공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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