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을 당해 회사·고용노동부에 신고한 피해자 2명 중 1명 이상이 보복소송 등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법을 강화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 1~2월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중 직장내 괴롭힘은 175건이다. 이 중 67건이 회사 또는 노동부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근로기준법에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분을 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신고 건의 절반이 넘는 36건(53.7%)이 신고 후 불리한 처우를 당한 사건으로 조사됐다.
경험하고 있는 불이익 처우 유형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눈에 띈다. A씨는 회사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게 회유하자 노동부에 신고했다. 직장 상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이 나오자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A씨를 고소했다. 회사는 수사 과정에서 A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해고하기 위해 징계를 추진했다. 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직장갑질119에 문의했다. 성희롱 사건 등으로 회사를 떠난 B씨는 퇴사 2년이 지났지만 업무방해·무고 등을 이유로 삼은 사측의 소송전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신고를 이유로 무고·업무방해 고소나 손해배상 청구와 같은 보복소송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해 노동자를 위축시키고, 가해자는 면피를 할 수 있는 도구로서 보복소송이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의 처벌을 낮추기 위해 법률 대응을 총동원했던 정순신 변호사 사례를 언급하며 “끔찍한 2차 가해인 소송 갑질을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기호 변호사(직장갑질119)는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형사 고소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도 피해자를 상대로 가해자·사용자가 제기하는 소송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점을 적극 인정하는 등 소송 갑질을 규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