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의 불법·부당행위시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추진한다. 3월 중 법 개정을 위한 당정협의를 진행한다. 노동계는 노조할 본질적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불합리한 노동관계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단장 김경율) 결과와 이후 정부 법제도 개선방향을 발표했다. 자문회의는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와 법과 원칙에 기반한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지난 1월12일 구성됐다.
사용자 부당·불법 행위 5배 많은데, 노조 처벌만 계획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1월26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노사 불법행위 사례를 발표했다.
횡령 같은 노조 재정 부정 사용과 조합원 폭행·협박 등 집단노사관계에 관한 신고는 51건, 포괄임금제 오남용과 직장내 괴롭힘 등 개별근로관계 관련 신고는 250건 접수됐다. 신고사례 중 노조의 불법행위로 분류된 것은 17% 정도다. 사용자 불법행위의 5분의 1정도다. 그런데 이날 발표한 정부 대책은 사용자의 부당·불법행위보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노조의 불법·부당행위에 관한 규율 등에 집중됐다.
자문회의는 “노동조합이 노동 3권을 적법하고 합리적으로 행사하도록 다른 근로자의 노동 3권을 침해하는 행위와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금지 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폭행·협박 등을 통해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거나 위법한 단체협약 체결을 강요한다면 형사처벌 등 제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의 불법·부당행위 사례로 조합비 횡령·부당집행, 회계 비리 의혹을 제기한 조합원 제명 등 명백한 불법 사례뿐 아니라 법적 논란이 있는 사례도 포함됐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월례비가 적다는 이유로 작업을 거부, 사측이 대체기사를 투입하자 타워크레인 전원을 꺼 정상조업을 방해하는 사례와 산별노조의 집단탈퇴 금지 규약으로 탈퇴하지 못한 지회 사례 등이다.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업계의 월례비가 임금 성격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최근 나왔다. 또 산별노조 집단탈퇴를 허용한 2016년 2월 헌법재판소 결정은 독자적인 단체교섭권·체결권과 규약을 갖지 못한 지부·지회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노동계·전문가 의견이 있다.
3분기 중 노조 회계 가이드라인 마련
공시 시스템 구축, 불이행시 보조금 지원 제외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 자문회의단은 노조 회계 공시 제도를 제안했다. 정부는 자문회의 제안에 따라 3분기 중 노조 회계 가이드라인을 마련, 공시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잠재적 조합원인 미가입 근로자의 노조 선택권·단결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한다”는 명목이다. 자율 공시에 참여하는 노조에는 보조금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노조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 노조는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공인회계사로 제한한다. 현행 노조법 25조는 6개월에 한 번 이상 회계 감사를 실시, 감사결과를 전체 조합원에 공개하도록 돼 있지만 회계 감사원 자격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조합원의 열람권을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로 명문화하고 위반시 과태료 부과 규정을 마련한다. 회계 관련 서류 보존 기간은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정식 장관은 “오늘 발표한 ‘불합리한 노동관행 법제도개선 방향’을 토대로 입법이 필요한 과제는 당정협의 등을 통해 3월 중 노조법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며 “회계감사원 자격·선출과 결산결과 공표 방법 등을 담은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도 3월 중 입법예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업무방해가 인정되면 이미 형법으로 처벌되고 있는데 또 옥상옥으로 처벌규정을 두겠다는 것”이라며 “노조할 권리가 본질적으로 침해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일부 노조의 일탈 사례를 꼬투리 잡아 전체 노조를 부패세력으로 매도하고, 노조혐오를 부추겨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며 “노조흠집내기, 노조재정 압박하기를 통한 신종 노조탄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계획은 내용 전체가 노동조합만 겨냥하고 있다”며 “사용자의 불법에는 눈 감고, 노동조합에게는 없는 법도 만들어서 탄압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