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공짜 노동’을 유발하는 포괄임금·고정OT(연장근로) 사업장을 기획감독하겠다고 밝혔다.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추진을 앞두고 ‘공짜 야근’ 규제에 나서는 모양새다.
노동부는 “내년 3월까지 연장근로시간 위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 사업장 기획감독을 실시하겠다”고 19일 밝혔다. 법정 제도가 아닌 포괄임금제는 판례로 굳어진 임금지급 계약 방식으로, 각각 산정해야 할 복수의 임금항목을 뭉뚱그려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계약 형태다. 원칙적으로 사용자는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에 따라 시간외근로 등에 상응하는 법정수당을 산정해 지급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법원 판례는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등 엄격한 요건하에서 임금의 포괄적 산정을 인정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임금 계산의 편의 등을 이유로 노동시간 산정이 가능한데도 고정OT 계약 등의 방식으로 포괄임금제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실정이다. 예컨대 기본임금과 수당의 구분 없이 ‘연장·야간 휴일 포함 임금 100만원’ 또는 ‘기본임금 70만원+법정수당(연장·야간·휴일 포함) 30만원=100만원’ 형태다. ‘기본임금 90+연장(고정OT) 10만원=100만원’같은 고정OT 계약도 포괄임금에 해당한다.
포괄임금제는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주지 않아 ‘공짜 노동’으로 이어지기 쉽다. 고정OT 계약의 경우 사전에 약정된 연장근로시간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한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으로 일한 만큼 임금을 못받는 ‘공짜 노동’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유효한 포괄임금 계약으로 오인해 실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고정OT 계약을 유효한 포괄임금 계약으로 오남용하면서 실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임금체불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포괄임금 기획감독은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세 달간 실시된다. 전국 지방청 광역근로감독과에서 연장근로시간 제한 위반과 약정시간을 초과한 실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 임금·근로시간 관련 법 위반 여부를 집중감독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수개월 전부터 현장제보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 의심 사업장을 파악하고 기획감독을 준비해 왔다”며 “소프트웨어 개발업 등 10~20여개 사업장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포괄임금제 관련 기획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포괄임금제 폐지를 국정과제로 삼고 정부 지침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다. 노동부가 2020년 사업장 2천522곳을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29.7%(749곳)가 포괄임금제를 활용했다.
노동부는 내년 상반기에는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도 마련한다. 대책에는 노동자가 포괄임금제로 인해 임금 손실을 겪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전제인 근로시간 기록에 대한 투명한 관리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포괄임금제 폐지나 규제 지침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 양정열 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포괄임금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인정은 하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부분을 감독하는 것”이라며 “포괄임금은 판례로 형성된 논리인데 지침을 만들면 하나의 ‘제도’로서 공식 인정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양 단장은 “포괄임금 오남용을 막지 않고서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