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캐스터와 앵커·취재기자·라디오 진행을 도맡았던 울산방송(UBC) 프리랜서 직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근로자성이 법원에서 잇따라 인정되는 추세다. 올해 2월에는 KBS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항소심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된 바 있다. 7월에는 MBC 방송작가의 근로자성도 1심에서 인정됐다.
위임계약 없이 구두계약만 체결
5년간 일했는데 갑자기 계약종료
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울산방송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방송사측의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A씨는 2015년 12월 울산방송과 저녁뉴스 기상캐스터 계약을 구두로 체결하고 일하기 시작했다. A씨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취재기자 업무도 겸했다. 이후 사측이 2020년 6월 기상정보 코너를 폐지하자 A씨는 아침뉴스의 앵커를 맡았다.
하지만 A씨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 업무 횟수별로 산정한 수수료에서 사업소득세를 제외한 금액을 매주 지급받는 방식으로 일했다. 방송사가 고정된 사무실을 제공하고 분장실 자리도 배정돼 있었다. 촬영에 필요한 의상과 화장품 등도 회사가 제공했다.
그런데 라디오 진행과 뉴스앵커를 하던 지난해 4월 회사는 갑자기 A씨에게 계약종료를 통지했다. A씨는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를 신청해 인용됐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데도 서면으로 해고를 통지하지 않아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회사는 지난해 12월 소송을 냈다. 사측은 “A씨는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고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당사자 간 합의로 계약이 해지돼 해고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 “방송사, 우월한 지위로 지휘·감독”
방송사 프리랜서 근로자성 인정 추세
그러나 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는 A씨와 사이에 근로계약서뿐 아니라 위임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구두로 업무를 지시했다”며 “A씨는 기상캐스터·뉴스앵커·라디오 진행자·취재기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는 모두 회사가 업무를 제안한 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사가 경제적·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의미다.
특히 A씨의 근무형태가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상캐스터나 라디오 녹음 업무 등을 하기 위해 상당한 준비시간이 필요했을 것임은 경험칙상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며 “A씨가 주말 당직 업무를 했던 점까지 고려하면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임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무장소가 사실상 고정된 부분도 근로자성 인정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회사가 사무실이나 사물함, 분장실 자리 등을 배정해 A씨가 근무 장소를 직접 정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의상이나 화장품 비용을 회사가 부담한 부분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업소득세를 낸 점도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잣대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방송사가 지정한 프로그램에 관한 업무만 했으므로 보수체계가 완전한 성과급이 아니라는 취지다. 더불어 A씨가 다른 방송사 업무를 하지 않은 점을 토대로 종속된 형태의 업무 수행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계약종료가 해고라고 전제한 뒤 사측이 서면통지의무를 위반했으므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A씨를 대리한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방송국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근로자성 인정 범위를 넓히는 추세를 확인한 판결”이라며 “사용자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든 지표가 근로자성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