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달 30일 <2022-23 글로벌 임금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실질 총임금의 변동을 분석한 보고서는 고용·명목임금·인플레이션 등의 여러 요소가 코로나19와 생계비 위기 상황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다뤘다.
“인플레이션과 코로나19가 임금과 구매력에 미친 영향”이라는 부제를 단 보고서는 코로나19 위기와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실질임금 인상을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임금 불평등과 성별 임금격차가 소득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경제가 위기에서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노동자 임금과 가구 구매력이 지난 3년 동안 눈에 띄게 찌그러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불평등 증가는 2020년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와 지난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구조적 위기 상황과 맞물리며 글로벌 경제의 회복에 위협을 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회불안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ILO는 경고했다.
올 초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3.6%로 잡았다가 지난 7월 3.2%로 낮췄으며, 10월에는 2.0~2.7%로 크게 낮췄다. 이러한 IMF 수치를 인용하면서 내년 경제를 많은 사람들이 불경기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ILO는 내다봤다.
ILO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에서는 올해 2분기 고용 수준이 코로나19 감염병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지만, 중소득과 저소득 국가에서는 감염병 이전 수준에 2% 모자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소득과 저소득 국가에서 공식경제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비공식경제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은 올해 1분기와 2분기를 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그 결과 올 중반부터 각국 정부가 임금인상 등 통화긴축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글로벌 물가인상률은 8.8%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향후 경제 상황이 긍정적으로 진행된다면 2023년 6.5%와 2024년 4.1%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ILO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월 임금이 올 상반기에 실질적으로 0.9%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ILO가 <글로벌 임금 보고서>를 처음으로 발간한 2008년 이후 최초의 하락 사례다. 통계 수치에서 임금인상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중국을 제외한다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월 임금은 1.4% 하락했다. 글로벌 임금 노동자의 60%를 차지하는 G20 국가들로 범위를 좁힐 경우 월 임금 하락률은 2.2%에 달한다.
코로나19 위기가 악화했던 2020년과 2021년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각각 1.5%와 1.9%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저임금 노동자들은 대거 실업자로 전락한 반면 고용이 안정적인 고임금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게 됐던 통계 수치의 ‘왜곡’에 의한 것이라고 ILO는 설명했다.
글로벌 임금인상률 상황을 대륙별로 살펴보면, 2020년 4.3%까지 올랐던 북미의 경우 올 상반기에 -3.2%로 내려앉았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연안국은 2020년 3.3%까지 올랐다가 올 상반기에 -1.7%로 떨어졌다. 유럽연합은 2020년 0.4%와 2021년 1.3%까지 상승다가 올 상반기에 -2.4%로 하락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020년 1.0%에 이어 2021년 3.5%까지 올랐다가 올 상반기에 다시 1.3%로 내려갔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경우 2020년 -1.6%로 주저앉았다가 올 상반기에 2.5%로 반등했다. 아랍 국가들은 2020년 0.8%, 2021년 0.5%, 2022년 1.2% 등 임금인상률이 안정세를 유지했다. 동유럽의 경우 2020년과 2021년 각각 4.0%와 3.3%를 기록했다가 올 상반기에 -3.3%로 크게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충격이 코로나19라는 생태적이고 보건적인 위기와 결합되면서 글로벌 수준의 불확실성이 2차 세계대전 이전 이후 가장 심각하게 증폭된 현 상황에서 ILO는 실질임금과 구매력 하락이 저소득층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면서 각국의 사회불안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