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주목할 인물 2위로 차기 한국노총 위원장이 꼽혔다. 24명이 지목했다. 윤석열 정권이 노동시간 유연화·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한국노총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노총 28대 임원선거에 3개 후보조가 출마해 경쟁하고 있다.  3개 후보조 선거대책본부에 노동 현안과 내부 운영을 주제로 정책을 질의했다.

노동 현안 부문에서 9가지 질문을, 한국노총 내부 운영과 관련한 주제로 6가지 공통 질의를 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유연화 등 노동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은 비슷했지만 대응 방식에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사회적 대화 대응 방침과 핵심 공약, 2024년 총선방침 등 3파전으로 치러진 계기가 되는 의제에서는 입장차가 뚜렷했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은 답변도 있었고, 견해 위주로만 답변하며 구상을 내놓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표 참조>

기호 1번 “총파업” 기호 2번 “상시대응기구” 기호 3번 “투쟁·대화 병행”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와 고용노동부 새해 업무보고를 통해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시간은 유연화하고, 집중 노동은 가능하게 하고, 노조 힘은 빼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기호 1번 김만재-박해철(위원장-사무총장) 선거대책본부는 답변서에서 “정부 노동정책은 한마디로 재계 민원 들어주기다”며 “총파업을 조직하면서 대등한 노정관계를 만들고, 노동계 및 시민단체와 연대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투쟁할 것은 투쟁하는 전략을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기호 2번 김동명-류기섭 선거대책본부는 “아무리 세련된 단어로 포장한들 노동시간 연장이고 노동강도 강화일 뿐”이라며 “노동·연금개악 투쟁에 대응하기 위해 상시대응기구를 총연맹과 지역본부에 구성해 투쟁의 구심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호 3번 이동호-정연수 선거대책본부는 “군사독재보다 더한 노동탄압이 계속 강행된다면 국내 노동계와 대동단결해 대정부 투쟁을 선도하겠다”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정부 기구와 협의를 즉각 추진하고, 여야와 정부를 가리지 않고 한국노총 역량을 가동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을 두고도 반발했다. 기호 1번은 “(자율점검해 보고하라는) 노동부 공문에 절대 대응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하달하겠다“고 강조했다. 기호 2번은 “노조를 비도덕 집단으로 몰아 고립시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면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부 의도를 보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밝혔다. 기호 3번은 “노동계를 공공의 적으로 몰고 있는 정부 태도는 노동계 저항에 불을 지피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정부에 경고했다.

경사노위 대응 방침을 묻는 말의 답변에는 입장차가 느껴졌다. 기호 1번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김문수 경사노위원장 교체를 요구하겠다”며 “한국노총 주도로 경사노위 정상화에 주력하고, 교사·공무원·금융업종에 필요한 노정교섭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기호 2번은 “김문수 위원장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위원장 개인의 발언만으로 사회적 대화라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며 “중앙의 사회적 대화도 필요하지만 지역 및 업종별 사회적 대화도 산업전환에 있어서는 중요하다”고 답했다. 기호 3번은 “당선 소감을 ‘대정부 협상 대화 촉구 기자회견’으로 갈음하려 한다”며 “어떤 후보보다도 정부와 여·야와 적극 대화하고, 정부가 반노동정책을 밀어붙이면 정권 퇴진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적시했다.

사회적 대화 중단을 판단할 기준이 있는지도 물었다. 기호 1번은 “대등한 교섭을 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춰져 있다면 진중하게 끝까지 대화를 이어 나갈 것이다”고 답했다. 기호 2번은 “사회적 대화를 이용해 노동개악을 강행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면 결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냈다. 기호 3번은 “지금껏 보여준 노동계를 대하는 태도로 이미 선을 넘었다”면서도 “대정부 투쟁선포 전까지는 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출신 정치인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나눠서 각각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는 세 후보조 모두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기호 1번은 “입법 과제를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기호 2번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대한 노동계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함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호 3번은 “노동현장에서 몸담으며 체험한 국민의 요구와 노동자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핵심공약 답변에서 각 후보조의 차이가 잘 드러났다. 기호 1번은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고 위원장 직선제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우선으로 내걸었다. 기호 2번은 상시투쟁기구를 구성하고 사회대전환 논의를 위해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범국민회의 구성을 선도하겠다고 공약했다. 기호 3번은 고령자 중심의 한국노총 기득권 구조를 개혁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업종별 상임부위원장을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 총선방침
1번 “요구안 수용세력 지지” 2번 “내부 의견수렴” 3번 “지역에서 판단”

한국노총 내부 운영에 대한 과거 평가와 미래 구상도 물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한국노총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대선에 이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지역별·조직별로 각자 판단’하는 것으로 정했다. 선거방침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기호 1번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이후에도 당선을 위한 활동은 지지부진했다”며 “김동명 위원장의 우유부단함이 한국노총 위상을 떨어뜨리고 내부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평가했다. 기호 2번은 “(내부 논의를 거쳐 대선방침을 결정하면서) 한국노총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음에도 이전만큼 조직적 후유증이 크지 않았다”며 “지방선거 방침은 지방 특색이 다르고, 지역본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정했다”고 밝혔다. 기호 3번은 “정치방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합원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위원장이 너무나 일방적인 정치 행보를 보여 조직갈등이 유발됐다”며 “노동탄압 국면에서 (정부에) 한국노총이 말 한마디 못하는 것도 대선에서 확인된 위원장의 편향적인 처신과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다. 내년 총선방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기호 1번은 “요구안을 현실화하는 세력을 지지하겠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기호 2번은 “내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기호 3번은 “지역 후보를 중심으로 지역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답했다.

한국노총 28대 임원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져 유례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선거 후 조직 안정화 방안에 대해 기호 1번은 “당선 즉시 현장으로 내려가 대표자와 조합원을 만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기호 2번은 “압도적 승리로 갈등을 최소화하겠다”고 자신했다. 기호 3번은 “김만재 후보조와는 당락을 떠나 함께 한국노총을 개혁할 것이며, 이 뜻에 동참하는 그 누구와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