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주당 12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가 아닌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월 단위로 바뀌면 월 52.2시간 안에서 한 주에 연장근로를 몰아 시킬 수 있게 된다.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방향’과 같은 내용으로, 예견된 결론이다. 연구회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틀 안에서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지만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사용자에 자유로운 노동시간 사용권만 강조되고 있다.
주 52시간 허무는 노동시간 총량관리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를 비롯한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회는 17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노동시간 제도와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회 논의 결과를 설명하고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 명단도 공개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이날 취재진에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권 교수는 “‘근로시간의 총량’이 더 이상 노동시장의 성장동력이 될 수 없다는 진단 아래, 미래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의 핵심 키워드로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틀 안에서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건강한 노동의 선순환 구조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세부안을 들여다보면 선택권 확대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허무는 노동시간 개편안이다.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외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월 단위뿐만 아니라 분기·반기·연간 단위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강제가 필요하고 이외 건강권 보호조치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노동시간 총량 규제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대통령 공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간 총량 규제를 연간 단위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총은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정책제안서에서 “연장근로시간 총량 규제를 주 단위에서 월 또는 연 단위로 변경하자”며 힘을 실었다.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교수는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11시간 연속휴식을 도입하면 하루 최대 11.5시간, 주당 산술적으로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며 ‘주 92시간 노동’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연구회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방안도 내놨다. 연장근로 등을 휴가로 저축하는 경우 법정 가산수당 기준보다 높은 할증을 적용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가 방식도 안식월 같은 형태의 ‘장기휴가’나 징검다리 연휴, 정기·순환 휴가를 집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의 ‘단체 휴가’, 병원 진료나 자녀 등·하원 등을 위한 ‘시간 단위 연차휴가’ 등으로 다양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업 원할 때 무한 연장근로
할증임금 대신 안 바쁠 때 휴가로 지급
하지만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활용하면 기업의 필요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하되 수당 대신 휴가로 지급하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초과근로에 따른 가산임금을 받을 수 없다. 그만큼의 임금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제시한 ‘11시간 연속휴식권 강제’나 ‘휴가사용 확대’는 연차휴가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보완책이 될 수 없다”며 “연장·휴일·야간노동시간을 휴가로 보상하거나 대체한다는 것은 사업주에게 일한 시간만큼의 임금을 안 주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길을 터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구회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되 정산기간이나 대상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성 확대는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가 전제돼야 한다”며 “공짜노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회는 이달 중 임금체계 개편과 추가 개혁과제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다음달 13일 최종 권고문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