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정과제로 내놓은 노동개혁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무력화로 쏠리고 있다. 주 12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 단위, ‘월·분기’ 단위, ‘월·분기·반기·연간’ 단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근로시간 제도 적용 제외를 검토한다. 직무급제 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임금체계 개편 방향도 분명히 했다.
주 52시간제 무력화 3가지 시나리오
내년 6월 전까지 정부입법안 제출하고 추진
지난 7일 ‘당·정 정책 현안 간담회 안건’에 따르면 당정은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3가지 방안으로 나눴다. 1안은 월 단위, 2안은 월·분기 단위, 3안은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다. 월 단위 이상일 경우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부여한다.
어떤 안을 선택하든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는 깨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시킬 수 없게 했는데, 관리단위가 월 단위가 되면 한 달 52.2시간의 연장근로 시간을 한 주에 몰아 쓸 수 있게 된다. 분기 단위일 경우 3개월 156.6시간을, 반기 단위는 313.2시간, 연 단위는 626.4시간의 연장근로를 특정 시기에 몰아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확정했다. 연장근로 등을 저축했다가 원하는 경우 임금 보상이 아닌 휴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활용하는 경우, 기업 필요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하되 수당 대신 휴가로 지급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초과근로에 따른 가산임금을 받을 수 없다. 그만큼의 임금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과 대상도 확대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연구개발업무, 사무관리, 생산업무 종사자 등에게만 적용하고, 연구개발업무만 3개월의 정산기간을 주고 그 외에는 1개월을 정산기간으로 두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은 근로시간 적용을 제외해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추진한다.
정부는 노사 의견수렴을 거친 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부입법안을 내년 6월 전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시스템 구축에 집중
포괄임금제·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실효성은?
근로시간 유연화와 함께 윤석열 정부가 내건 노동개혁의 핵심은 임금체계 개편이다. 당정은 내년 상반기를 연공급제를 직무급제로 개편하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확산을 위한 기반 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업종별 임금실태조사와 직무평가 협의체 구성,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대책을 내년 상반기에 ‘즉시’ 추진한다.
중소기업 직무·숙련 중심 임금체계 구축 지원에 나선다. 업종 차원 임금체계 개편·지원을 위한 산업·업종별 협의체를 구축한다.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를 제공하는 노동통계 전문행정기관 설치도 검토한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체계를 선택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법·제도 정비에도 나선다.
반면 노동자에게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악용되는 포괄임금제 개선에는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고만 했다. 대법원은 2010년 판결(대법 2008다6052)로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구체적 원칙을 세웠다. 2014년 판결(대법 2011도12114)과 2016년 판결(대법 2014도8873)을 통해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님에도 임금 지급계약을 포괄임금제 방식으로 체결할 경우, 포괄임금에 포함된 법정수당이 근기법에 따라 산정한 법정수당이나 최저임금에 미달한다면 무효라고 판결했다.
포괄임금제 외에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플랫폼종사자 보호대책 등 새로운 고용형태 보호 대책과 같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들은 전문가 중심 논의 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장기적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사회적 대화 시작 시기조차 잡지 않았다.
고용허가제는 확대 전망
인력부족 업종·직종 상시 분석시스템 마련도
한편 당정은 고용허가제를 개편해 이주노동자 인력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다. 내년 이주노동자 인력은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인데, 정부는 규모와 대상 업종을 확대할 전망이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노동자 300명 미만 혹은 자본금 80억원 이하인 제조업, 농·축산업, 20톤 미만 어업, 건설업, 서비스업(건설폐기물 처리업 등 5개 업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낙후된 노동환경으로 내국인 구인·구직의 인력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업종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업종중심의 기존 도입방식과 함께 직종과 직능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숙련된 외국인력 활용을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며, 인력부족 업종과 직종을 상시 분석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한편 당정은 주요 쟁점법안으로 파업 관련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합법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30명 미만 사업장 추가연장근로제 일몰기간을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구직급여 반복수급을 제한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지목했다. 노조법 개정안에는 “반대입장 견지”를,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민생대책임을 강조해 안건 상정”을, 고용보험법 개정안에는 “개정 필요성 적극 설명하고 전문가 간담회 거쳐 입법 추진”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