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로 읽는 노동] 노사관계 없이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 성공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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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2-11-18본문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호봉표로 대표된다. 정부조직이든 민간기업이든 호봉표에 의해 기본급을 정한다. 물론 지난 칼럼(본지 9월호)에서 임금체계가 없는 비중이 61.4%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이번엔 우리나라 조직의 호봉표 유형과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호봉표는 연공급 임금체계의 속성을 지닌다. 근속연수에 따라 일정한 규칙에 의해 호봉과 그에 상응하는 임금수준이 정해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보자. 신입사원 A씨의 기본급은 1호봉으로 정해지고, 근속연수가 1년 늘어날 때마다 1호봉이 늘어나도록 정해진다. 입사 5년차가 되면 5호봉이 되고, 이 시점에 입사하는 신입사원과는 4호봉의 임금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원리로 근속연수 간에 임금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호봉표도 특성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직군호봉표, 직급호봉표, 단일호봉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직군호봉표는 직군 단위로 호봉표를 정하고 있는 경우다. 직군(job family)은 유사한 직무를 묶은 그룹 단위로 설명된다. 관리직군, 생산직군, 영업직군, 정비직군, 간호직군, 일반직군 등 조직마다 그 명칭은 다양하다.
F기업의 사례를 보자. 자동차를 생산하는 F기업은 직군을 총 5개로 분류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는 기술직군, 자동차를 정비하는 정비직군, 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직군, 자동차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직군, 그리고 관리와 사무를 담당하는 일반직군 등이 있다. 1호봉(초임)의 금액은 직군마다 다르게 책정돼 있다. 그리고 호봉과 호봉 사이의 금액도 차이가 있다. 초임을 기준으로 보면, 영업직군 임금이 가장 낮고 일반직(사무직) 임금이 가장 높다. 호봉 간 차이(그림1과 그림2의 기울기 각도)를 보면, 기술직과 정비직은 호봉 간 차이가 같고, 일반직과 영업직은 호봉 간 금액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다. 직군별로 호봉표를 달리 정하고 있는 것은 직무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영업직은 판매를 장려하기 위해 기본급을 낮추는 대신 판매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기 위한 의도가 적용되었다. 일반직의 경우 대졸사원이라는 특성이 반영돼 다른 직군보다 초임 수준이 높게 설정되었다.
다음으로 직급호봉표를 보자. 직급호봉표의 대표적인 사례는 공무원 호봉표이다(공무원의 경우 정무직 공무원이거나 고위 공무원인 경우 연봉제를 적용함).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1급부터 9급까지 9개 직급으로 나눈다. 공무원의 직급제도는 승진 개념이다. 상위 직급일수록 권한과 책임이 커진다. 공무원의 입직경로는 9급, 7급, 5급 등으로 정해진다. 입직하는 직급별로 근속연수에 따라 호봉이 올라가게 된다. 직급별로 초임이 다르기 때문에 임금수준을 올리려면 상위 직급으로 이동해야 한다. 같은 직급 내에서는 호봉 상승에 따른 인상효과만 있지만, 상위 직급으로 이동하게 되면, 직급 간 차이 효과를 적용 받을 수 있게 된다. 직급별 호봉표는 직무의 특성 보다는 개인의 역할(role)에 따라 임금이 차등되는 방식이다.
단일호봉제는 직군과 직급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회사에 하나의 호봉표만 존재하는 경우다. 단일호봉표는 규모가 작거나 직무가 복잡하지 않은 조직에서 사용한다. 단일호봉표라고 하더라도 직무나 직군에 따른 차이를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직군에 따라 시작하는 호봉을 다르게 책정하는 경우다. 생산직은 1호봉부터 시작하게 하지만, 사무직은 5호봉부터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직급이 올라가는 경우 추가 호봉을 부여할 수 있다. 매년 1호봉씩 승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상위직급으로 승진하는 경우 1호봉을 추가로 부여하는 방식이다. 단일호봉제의 장점은 호봉 간 간격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호봉표의 특징은 단순히 연공서열을 적용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조직이든 일의 특성에 따라서 호봉표의 차이를 두고 있다. 앞에서 봤듯이 직군호봉표나 직급호봉표는 직무나 역할의 차이에 따라 임금 차이를 두고 있다. 또한 단일호봉표에서도 직무나 역할의 차이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다. 실제 그런 조직들이 많다.
D기업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D기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강기업에 속한다. 이 회사는 생산직군에 속한 노동자에게 단일호봉표를 적용하는데, 직무에 따라 호봉을 가산한다(현장에서는 이를 직무호봉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쇳물을 녹이는 공정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의 경우 직무등급이 8등급으로 분류되고, 본인의 근속 호봉에서 추가로 8호봉을 더 받게 되는 것이다. 본인의 근속 호봉이 10호봉이라면, 18호봉의 기본급을 받는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호봉표가 근속연수만 반영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는 연공급적 성격에 해당하지만, 한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면 직무와 역할의 차이가 반영돼 있다.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임금체계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볼 수 없다. 호봉표 안에서 작동하는 원리까지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호봉표가 직무와 역할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노사관계가 작동한 결과다. 공무원 호봉표는 예외로 하더라도, 민간기업의 경우 직군이나 직무에 따라 호봉표가 다르게 설계된 배경에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있었다. 우리나라 호봉표는 87년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는데,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단일호봉표가 많았다. 그러다가 점차 직군호봉표나 직급호봉표로 진화했다. 그 배경에는 노동강도나 숙련의 차이를 임금에 반영하려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체계는 노사관계와 함께 진화하기 때문에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데는 노사관계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임금체계 개편을 노사관계의 틀에서 논의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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