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 사다리 작업을 하는 모습.(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안전보건공단 유튜브 채널 갈무리>
배관설비 보조공이 업무량이 증가하며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사 9개월 만에 숨진 것은 업무상 재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망 1주일 전부터 업무시간이 늘어나 기저질환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취지다.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배관설비 보조공 A씨(사망 당시 55세)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배관공 보조로 입사 9개월 만에 사망
공단 “업무적 요인 아냐” 유족급여 거부
A씨는 2017년 2월 건설업체 하도급업체 소속으로 입사해 아파트 기계설비공사에 투입됐다. 주로 배관공의 작업을 보조하면서 자재와 공구를 준비해서 건네줬다. 배관공의 지시가 없을 때는 주로 옆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그해 11월 오후 4시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 동료에게 “가슴이 답답해 쉬겠다”고 말하고는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즉시 119 구급대원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A씨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급성 심근경색이 사인이었다.
그의 아내는 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급성 심근경색은 업무적인 요인보다는 여러 내재적 요인들에 의해 업무와 무관하게 자연 발생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지급을 거부했다. A씨가 25년 이상 흡연하고 숨지기 보름 전 시행한 건강검진에서 이상지질혈증 증세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공단 판정을 뒤집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감정의가 A씨의 흡연 이력이나 고지혈증이 심근경색 발병의 위험을 높였다고 볼 수 없다고 소견을 낸 점이 근거가 됐다.
법원 “업무시간 늘어 고지혈증 악화”
업무부담 가중요인 종합해 산재 인정
특히 사망 전 1주간 업무시간이 증가한 부분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발병 전 1주간 평균 업무시간은 57시간을 넘었다”며 “그 전의 12주간 업무시간(51시간3분)과 비교해 보면 약 12% 정도 업무량이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뇌심혈관계 질환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의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 기준(30%)’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1주일간 휴일 없이 연속 근무한 점 △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는 심근경색을 일으킬 정도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토대로 1주간의 업무량 증가가 심근경색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A씨의 1주 평균 업무시간이 약 51시간으로 노동부 고시의 ‘만성적인 과중 업무 최소기준’인 52시간에 미달하는 부분도 재판부는 “실제 업무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라고 봤다. 51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해 산출한 근무시간이며, 이마저 휴식시간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아울러 휴일 역시 발병 전 12주간 총 9일에 그쳐 노동부 고시가 업무부담 가중요인으로 정한 ‘휴일이 부족한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휴일마저 상당수는 추석연휴에 집중돼 있어 불규칙한 휴일로는 망인의 과로를 해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A씨가 보조 역할을 했지만, 무거운 자재와 도구를 취급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했을 여지가 크다고 봤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A씨의 업무가 기저질환을 급격히 악화시켜 심근경색 발생을 앞당겼다고 보고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며 “관계 법령상 과로 기준 시간에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인정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