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작업장의 위험방지조치를 취해야 할 실질적인 의무는 원청 대표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업 전체를 총괄하며 안전·보건 관련 시설투자의 자금 집행을 결정했다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사건에서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재예방 미조치 ‘행위자’ 쟁점
‘안전조치의무 부담’ 하급심 엇갈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선박수리·건조업체 오리엔트조선의 이동희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오리엔트조선은 2016년 9월 해상 DCM(심층혼합처리) 공법의 프레임 상부 절단 작업을 건설업체에 도급했다. 그런데 중량물 취급 과정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이 전 대표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사업이 전문 분야의 공사로 시행될 경우 ‘도급 사업주’가 산재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는 옛 산업안전보건법(29조3항)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검찰은 추락·낙하 등 위험을 예방할 안전대책이 포함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쟁점은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하는 ‘행위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였다. 옛 산업안전보건법(23조3항)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1년 ‘행위자’에 대해 사고의 발생과 인과관계가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조치를 할 의무가 있는 자를 가리킨다고 판결한 바 있다.
1심은 이 전 대표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1심을 뒤집었다. 이 전 대표가 산재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행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 전 대표가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거나 방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오리엔트조선도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 “원청 대표 실질적 작업 지휘”
‘경영책임자’ 해석 영향 가능성
그런데 대법원에서 원심이 다시 뒤집혔다. 이 전 대표가 사업장에 상주했고, 작업 준비 회의에도 참석해 실질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행위자’라고 봤다. 이 전 대표는 회의에서 하청 대표를 불러 육상크레인 작업 여부를 질문하는 등 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이 전 대표가 “구체적 지휘·감독을 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조선소장을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선소장에게 준 안전책임자 ‘임명장’이 제출됐지만, 실질적인 역할과 책임이 부여됐다고 볼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소장은 재판에서 “안전·보건관리 부서 업무에 대한 결재 권한이 없다”고 진술했다. 안전·보건관리 담당 팀장도 “이 전 대표가 수리조선업 전체를 총괄 경영하는 등 사업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안전·보건 시설투자 자금 집행도 결정한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사실상 ‘노무도급’만 제공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하청은 작업시마다 오리엔트조선이 제시하는 작업사양을 준수하고, 작업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한 뒤 확인과 검사를 받아야 했다”며 “작업의 성질은 일종의 노무도급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하청은 원청의 작업 장소에서 재해 방지를 위해 원청의 안전규정과 지시를 준수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는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판단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은 형식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에 대한 해석에서도 형식적인 외형만을 가지고 경영책임자로 볼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리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혀 그를 경영책임자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누가 사업장에서 권한을 가졌는지에 따라 옛 산업안전보건법상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사안”이라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