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이후 채용내정을 통지했다면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으므로 사후에 채용을 취소한 것은 해고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근로계약서 체결과 입사시기 등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통지했다면 계약체결 의사를 표시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근로계약서 작성하자” 합격 메시지
코로나 의심증세로 회사 방문 미루자 ‘입사 유보’
2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지난 25일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개발업체인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채용취소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사건은 A사가 지난해 5월께 구인공고 사이트에 ‘전자부품 영업 및 업무지원’ 업무의 경력직 직원을 모집하면서 시작됐다. B씨는 면접을 제의받아 같은해 5월28일 대표이사와 면접한 뒤 합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사측은 7~8월께 입사를 희망한다며 6월 내 회사에 방문해 연봉계약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자고 밝혔다.
이후 회사는 사무실 확장 공사를 이유로 입사시기를 9월로 늦춘다고 통보했다. 회사 대표는 B씨와의 통화에서 “근로계약을 쓰러 오면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B씨가 “9월 내로 입사가 확정된다고 생각하면 되나”고 묻자 대표는 “이제 근로계약서를 쓸 것이니까 날짜를 확정하고”라고 답했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날짜에 B씨가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생겨 일정을 취소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음성을 판정받은 B씨는 방문일을 7월로 미루자고 연락했지만, 사측은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했다.
A사 대표는 “2차 면담이 남아 있고 입사확정이 아니다. 열나는 것은 본인 사정이고 2차 면접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B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당황한 B씨는 “현재 직장은 이미 사표가 수리돼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다”고 거듭 답했지만, 대표는 “최종합격 통지도 하지 않았는데 왜 문자를 보냈냐”며 재응시하라고 요구했다.
사측은 결국 7월 “최종입사에 대해 ‘입사 유보’가 공식 입장”이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B씨에게 보냈다. 2차 면접을 진행하지 않았고, 근로계약도 체결하지 않아 최종합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B씨는 즉각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한 채용취소라며 구제신청을 해 인용됐다. 경기지노위는 “채용내정한 후 취소해 사실상 해고하면서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도 같은 판정을 내리자 사측은 올해 3월 소송을 냈다.
법원 “채용내정 통지로 근로관계 성립”
“일방적 의사에 따른 근로관계 종료”
법원은 합격 통보 메시지로 이미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채용내정 통지로 이미 근로관계가 성립됐으므로 이후 채용내정 취소를 통보한 것은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면접 합격 메시지’는 채용의사를 객관적으로 표명한 내용이라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합격 메시지에는 임금이 세분화돼 구체적 금액으로 명시됐고 입사시기도 특정됐다”며 “회사와 B씨가 근로계약의 본질적인 사항이 합의된 상태에서 계약체결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B씨가 이전 직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하고 있었는데, ‘2차 면접’을 안내받았다면 곧바로 퇴사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입사 유보) 메시지를 보내 채용내정을 취소한 것은 A사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한 근로관계의 종료로서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 해고의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B씨를 대리한 양지웅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최근 채용내정 취소를 가볍게 생각해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며 “채용취소를 결정할 때는 절차와 사유를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