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정책을 설계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부분 근로자대표제 법제화를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연공급제와 포괄임금제를 ‘공정하지 못한 임금체계’로 규정한 연구회는 쉽게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용노동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연공제, 비정규직·청년·여성에 차별적”
한국노총 “가장 한국적 임금체계”
연구회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주제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17일 노동시간을 주제로 한 1차 전문가 간담회에 이어진 두 번째 간담회다.
이날 연구회는 미리 공개한 발제문을 통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연공제가 연공을 쌓기 쉬운 대기업 정규직 남성에게만 유리한 임금체계라는 주장이다. 연구회는 “연공제가 임신·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여성이나 연공을 쌓을 수 없는 비정규직, 청년에게 구조적 차별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연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연공형 임금체계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리에 부합하지 않고 기업별 격차 확대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에 일부 공감한다”면서도 “연령 상승에 따른 생활비 상승을 반영하고, 임금 결정시 사용자의 자의적 평가를 어느 정도 배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연공제는 현실적으로 가장 한국적 특성을 담은 임금체계”라고 주장했다.
연구회는 포괄임금제 역시 ‘장시간 노동과 공짜노동’을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불공정한 임금체계로 규정했다. 그러나 연구회는 이날 직무성과급제 같은 대안적인 임금체계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좌장을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는 “획일적인 임금체계를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 여건에 맞게 다양한 임금체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음달 연구회가 노동부 장관에게 제시할 권고문에는 이런 방향과 함께 세부 개편 논의과제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는 “정년연장 등 ‘계속고용’ 기반을 구축하는 사회적 대화를 조속히 시작하고 이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업종·직종·직군별 특성에 따라 임금체계가 상이한 만큼 임금과 직무를 조정할 수 있는 법제 개선방안을 권고했다. ‘부분 근로자대표 법제화’가 핵심이다. 권 교수는 “취업규칙 변경 전반이 아니라 임금에 한해 부분 근로자대표제 도입을 법제화할 것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안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과도 맞아떨어진다. 윤 대통령은 ‘연공형 임금체계’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사업장 내 직무·직군·직급별로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서면합의로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과반수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임금체계 차이가 있는 경우 노동자집단을 잘게 쪼개어 동의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의미다. 과반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대표는 노조가 맡는데 부분 근로자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노조의 대표성이 모호해질 수 있다.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도 권고문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는 “포괄임금 오남용 억제를 위해 노동시간이 명확하게 산정되고 이에 따른 임금이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어야 한다”며 근로시간 관리와 임금체계 설계 지원 등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방안으로 권 교수는 “근로감독 강화, 임금대장에 근로시간 기록 관리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을 만들어 관리할 것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생형 임금위원회 설치 제안
“지역·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논의 필요”
연구회는 ‘상생형 임금위원회’ 설치도 검토했다. 상생형 임금위원회는 임금 관련 차별 분쟁 예방을 위해 임금 통계를 수집·관리하고 원·하청 임금격차가 심각한 업종 임금 실태를 조사한 후 그 결과를 공표하는 역할을 한다. 또 노사정이 참여해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역·업종 차원의 임금체계 개편을 권고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연구회는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에 공감해도 기업단위에서 기존 임금체계를 원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렵다”며 “기업 수준을 넘어선 지역·업종 단위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업 상생협의체’처럼 업종별 혹은 지역별 협의체를 만들어 임금체계 개편의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연구회는 추가 개혁과제와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를 한 차례 더 진행한 뒤 다음달 13일 최종 권고문을 노동부에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