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 전·현직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했다.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특히 법원이 ‘15일 미만’ 근무한 직원을 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취업규칙은 무효라고 판단해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현대모비스 퇴직자 17명도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사실상 승소를 확정한 바 있다.
“성과 관계없이 상여금 일률 지급”
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재판장 이기선 부장판사)는 지난 1일 현대모비스 전·현직 직원 A씨 등 3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현대모비스는 직원들에게 통상임금의 750%를 짝수 달에 각 100%씩, 명절과 하기휴가에 각 50%씩 정기적으로 지급했다. 이후 2015년 12월 상여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한 직원은 상여금 지급에서 제외한다는 내용 등으로 급여규정을 개정했다.
그런데 사측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고 각종 수당을 지급하자 A씨 등은 2019년 10월 소송을 냈다. 이들은 2010년 1월~2016년 9월 급여에서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재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상여금은 업적·성과에 관계없이 확정된 금액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급여규정에서 경영성과 및 근무성적에 따라 상여금의 지급률과 지급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정했더라도 이에 따라 차등 지급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5일 미만 근무’ 제외 “근로기준법 위반”
주목할 부분은 ‘15일 미만’ 근무한 경우 상여금 지급 제외 대상으로 삼은 급여규정을 무효라고 판단한 대목이다. 재판부는 “(급여규정은) 임금을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 지급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43조)에 반하며,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으로서 근로기준법(15조)에 따라 무효”라고 지적했다.
이미 노동의 대가가 발생했는데도 조건을 달아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취지다. 그러면서 “상여금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당연히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 즉 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며 “지급기간이 수개월인 경우에도 근로의 대가를 수개월간 누적해 후불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차지부가 2013년 제기한 소송 재판 결과와 정반대의 판단이다. 현대차 대표소송의 경우 하급심은 상여금 시행세칙에 있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 상여금 지급 제외’ 규정을 근거로 통상임금 요건인 고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이 진일보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A씨 등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2018년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소송 2심에서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고 판단된 것과 전체적인 취지가 비슷하다”며 “더 나아가 재직자 근무일 조건의 적법성 여부를 전향적으로 봤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시효 완성 주장, 법원 “대표소송 적용 신뢰 부여”
소멸시효도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됐다. 사측은 A씨 등이 3년간의 임금채권 시효가 소멸한 후 소송을 제기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소멸시효는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노사 회의가 있었던 2012년 9월부터 역산해 3년이므로 유효하다고 봤다. 현대차 노사는 2012년 9월 대표소송의 대법원 판결 결과를 전 직원에게 적용키로 했다가 2019년 9월 대법원 선고 전 소 취하에 합의했다.
현대모비스 노사도 당시 현대차 합의 내용을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은 대표소송 취하 두 달여 만에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회사가 대표소송 판결이 확정될 경우 미지급 임금을 소급해 지급하겠다는 신뢰를 부여해 근로자들로서는 별도 소 제기가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