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1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규정된 근로기준법을 월 단위로 바꾸기 위한 여론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주한유럽상공회의소를 찾아 연장근로를 1주 이상으로 관리하고 있는 유럽 주요 국가의 근로시간 제도를 참고하겠다며 정책 방향을 알렸다. 우리보다 연간노동시간이 400~600시간이나 적은 유럽 상황을 아전인수식으로 가져다 붙였다는 비판이 인다.
유럽 기업인 만나 유럽 근로시간제 사례 청취
이 장관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유럽 기업인들에게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소개했다. 노동시간 관련 유럽 주요국의 법·제도를 청취하고 주한 유럽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어려움을 듣기 위해 노동부가 마련한 자리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 자리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프랑스·독일·영국의 노동시간 제도를 소개했다. 세 나라 모두 1주 단위 이상으로 연장근로를 관리하고 있다. 이 장관은 “유럽 주요 국가들이 노사합의로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참고하겠다”며 “우리의 근로시간 제도도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방식으로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6월16일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노동시간과 관련해 저축계좌제 도입,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같은달 23일 노동부는 연장근로시간 총량 규제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제도를 바꾸려는 이유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해서다. 현재도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같은 다양한 유연근로제가 있지만 사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노동부는 활용도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노사 대표가 서면합의해야 하거나 노동자 건강권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 등의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연장근로시간 총량 규제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현재 법정 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노사 당사자 간 합의로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이를 월 단위로 넓히고 근무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적용하면 하루 11.5시간, 주 7일 근무시 80.5시간까지 가능하다. 주 6일 일할 경우 69시간이다.
이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려면 현 근기법에 따라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유연근로제의 한 종류인 선택근로제를 사업장 차원의 노사합의가 아니라 직무나 부서별 노사합의로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런 윤석열 정부의 희망은 근기법 개정이라는 국회 관문을 넘어야 한다. 노동부가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며 연일 홍보하는 것은 국회 입법을 위해서다.
“유럽과 비교하려면 노동시간 유럽 수준으로 낮춰야”
이날 간담회에서 노동개혁을 하겠다며 프랑스·독일·영국의 노동시간 제도를 앞세운 것은 노동부 실책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연장근로시간 규제 단위는 12주, 영국은 17주, 독일은 24주다. 그런데 프랑스 노동시간은 1주 35시간, 연간 법정근로시간은 1천607시간이다. 1주 최장근로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데, 연속하는 12주를 평균해 1주 44시간을 초과할 수도 없다.
독일은 하루 8시간이지만 6개월 또는 24주 이내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1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주 60시간이 가능하다. 영국의 주 최장 노동시간은 48시간, 산정기간은 17주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제도 운용 결과는 매우 다르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연간 노동시간은 독일 1천306시간, 프랑스 1천405시간, 영국 1천487시간이다. 산별협약이나 연차휴가제도 등을 통해 법정 노동시간보다 훨씬 적게 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1천928시간이다. 세 나라보다 441~622시간이나 더 일한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우리가 연간 55~77일 더 많이 일한다는 얘기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법의 보호 수준도 다르고, 산별협약으로 연장근로를 줄이는 유럽 국가의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노동부는 노동시간 총량 규제 단위만을 언급했다”며 “과로 사회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노동시간 유연화에만 목을 매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 평가도 다르지 않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동시간 총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다른 현실을 무시하고 유럽의 유연근무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유럽과 비교하려면 우리 총 노동시간을 유럽 수준으로 먼저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유럽의 노동시간 제도를 말하려면 그들이 가진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 변화 과정 등을 검토해 우리의 미비점을 개선하겠다고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