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퇴사로 업무량이 급증해 말기신부전 진단을 받은 사내식당 조리보조원이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과중한 육체적 부담이 기존 만성신장병을 급격히 악화시켰다고 봤다.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조서영 판사)은 최근 조리보조원 A(70)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가 소송을 제기한 지 2년6개월 만의 1심 결론이다.
‘195인분 식사’ 단 2명이 준비
만성신장병 악화, 말기신부전 진단
A씨는 2010년 11월부터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회사 구내식당에서 조리보조원으로 근무했다. 소속 업체가 바뀌었지만, 동일한 구내식당에서 점심·저녁 식사의 조리와 배식을 담당했다. 설거지와 청소 업무도 도맡았다.
휴일은 일주일에 하루만 보장됐다. 주중에는 휴식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9시간을 근무했고, 토요일은 4시간30분가량 일했다. 하지만 설거지나 청소가 밀릴 경우 매일 1~2시간 정도 연장근무하고 퇴근했다. 파견업체가 변경된 2012년 7월께부터 1주 평균 57시간가량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약 195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데도 구내식당의 종일 근무자는 A씨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그런데 2013년 6월께 회사가 매출 악화를 이유로 인원 조정을 실시해 동료 직원 1명이 퇴사했다. 다른 동료 1명이 채용됐지만 오전근무만 하면서 A씨의 업무는 늘어났다. 그해 7월부터 홀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와 청소도 담당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에 앓던 만성 신장병이 악화했다. 평소 고혈압이 있던 A씨는 2012년 만성신장병 3기를 진단받아 두세 달 간격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아 왔다. 그런데 동료 퇴사 이후 1년10개월여 지난 2015년 4월 말기신부전(만성신장병 5기)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했지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거부됐다.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혈압과 만성신장병 진단 이력이 있어 2013년부터 업무 강도가 증가했으나 만성신부전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추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A씨는 2019년 2월 소송을 냈다.
법원 “과로가 말기신부전 악화 원인”
“신장병 인과관계 입증 판례 부족”
법원은 업무상 과로로 기존 질환이 악화했다며 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정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A씨는 만성신장병 3기의 기존 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육체적 과로가 누적돼 고혈압에 영향을 미쳤다”며 “다시 만성신장병 3기를 단기간 내에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켜 말기신부전이 발병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원 감정의가 “과로나 스트레스는 만성신장병의 악화요인인 고혈압과 상관관계가 있어 고혈압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만성신장병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제시한 소견을 참고했다. 지속적으로 높은 노동강도의 과로 상태에 놓였다는 취지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동료 근로자의 근무시간이 단축됨으로써 오후 업무를 단독으로 수행하게 됐고, 그 무렵부터 업무부담이 상당히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연령이나 신체조건, 건강상태까지 감안하면 이 같은 업무는 과중한 육체적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업무상 요인 말고는 만성신장병 3기가 급격하게 악화할 뚜렷한 요인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신장 질환과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학 논문과 판례 등이 많지 않아 입증이 어려웠다”면서도 “2020년 발표된 최신 논문과 재해자의 업무이력과 건강상태 자료 등을 제출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