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조선에서 해고된 A씨가 2015년 3월께 대기발령을 받은 뒤‘면벽 근무’를 하던 장소의 모습. 당시 사무실에는 인터넷이 끊겨 있어 기본적인 업무수행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저성과를 이유로 대기발령하고 보직을 부여하지 않았다가 취업규칙의 자동해고 조항에 따라 해고한 것은 인사권 남용으로서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저성과자의 세부요건을 구체적으로 판단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사고과·다면평가 최하위에 대기발령
‘면벽 근무’에 취업규칙 적용해 해고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5일 대선조선 전 직원 A(54)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 중 해고무효확인 청구 및 임금청구 부분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가 해고된 지 7년2개월 만의 대법원 결론이다.

사건의 발단은 A씨가 인사고과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서다. 1997년 입사해 약 18년간 근속한 A씨는 2015년 1월께 ‘2014년 하반기 인사고과평가’에서 관리직 254명 중 253위로 최하위 D등급을 받았다. 당시 그는 협력사 업무지원팀장을 맡고 있었다.

하위직이 상급자를 평가하는 ‘다면평가’ 결과도 최하위였다. A씨는 기술·생산본부그룹 35명 중 33위를 기록했다. 이후 회사는 조직개편을 단행한 뒤 인사위원회를 열고 그해 3월1일 A씨를 포함한 4명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A씨는 인사총무팀 소속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대기발령 이후였다. A씨는 인사총무팀 사무실 내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인터넷이 끊긴 책상에 앉아 ‘면벽’ 근무를 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대기발령 대상자에게 매달 수행과제를 주고는 5단계(S~D)로 등급을 나눠 평가했다. A등급을 받아야 대기발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측은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연간 간접비 150억원 절감방안을 제시하라’는 내용의 과제를 부여했다. A씨는 과제를 제출했지만, 사측은 A씨에게 D등급을 줬다.

무리한 과제는 계속됐다. 그해 5월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 교재를 통한 업무 테스트’를 실시해 40점 이하는 업무부적격으로 판단한다고 공지했다. A씨는 31점을 받았다. 그러자 사측은 급기야 인사위원회를 통해 그해 7월17일 해고했다. 무보직 처분을 받은 후 3개월이 경과됐을 경우 해고한다는 취업규칙 조항을 적용했다. 불과 6개월 만에 대기발령과 해고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진 셈이다.

1·2심 “낮은 평가등급 받아 해고 정당”

A씨는 ‘대기발령’에 대한 구제신청을 했지만, 부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기각됐다. ‘해고’의 경우에도 부산지노위에서 구제신청이 기각되자 A씨는 2016년 10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저성과자에 대한 대기발령의 정당성과 △대기발령 중 최하위 평가로 인한 해고의 정당성이었다. A씨측은 대기발령이 사용자의 인사권과 재량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력감축을 위한 퇴출 압박 목적에서 주관적인 평가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해고 역시 대기발령 기간이 3개월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단행됐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정당한 대기발령이라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경영상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회사의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조직개편과 객관적인 인사고과평가에 따른 대기발령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A씨가 아내가 운영한 맥줏집에도 관여해 직무에 지장을 줬다고 봤다. 또 대기발령 기간에도 과제 수행에 대해 낮은 평가를 받아 대기발령의 사유가 소멸하지 않았다며 불공정한 평가가 아니므로 정당한 해고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근무능력 개선 여부, 심리 미진”
해고자 “18년 근속했는데 저성과자 낙인”

대법원은 원심의 심리가 미진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 현대중공업 사건의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가져왔다. 대법원은 당시 취업규칙에 저성과자 해고 조항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해고가 가능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기존 법리를 적용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부진이 다른 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정도를 넘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고 향후에도 개선될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를 심리해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지 대기발령이 정당하고 대기발령 기간에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은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이해할 수 없는 해고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18년 동안 장기근속하면서 A·B 등급 등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투자와 관련한 건의를 했다는 이유로 저성과자로 낙인찍혔다”며 “하급심에서 회사의 협박이 담긴 녹취록을 제출했는데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줬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저성과자 해고의 구체적인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A씨를 대리한 이동산 변호사(법무법인 아이앤에스)는 “대법원은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의 부진이 어느 정도 지속됐는지, 향후 개선 가능성이 있는지, 근무능력 개선 기회가 부여됐는지 등을 해고에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저성과자 해고의 정당성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