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대리점주가 복수노조를 설립한 사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가 노조활동을 지배·개입하려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노조는 ‘반 민주노총 투쟁’을 주요활동으로 내건 국민노조 소속으로, CJ대한통운 본사 점거와 관련해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을 지난 2월 고발하기도 했다. 국민노조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위원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문수·김준용씨가 각각 조합원과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전국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조치원·신세종 대리점주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받아들였다. 다만 택배노조가 국민노조 세종지부 및 조치원·신세종 지회 설립의 효력이 없다고 청구한 것은 기각했다. 택배노조는 지난 8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파업 중단-복수노조 설립 취소’ 거래하려 한 정황도
복수노조 설립은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이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해 말부터 파업을 시작한 데서 촉발됐다. 지난해 7월 설립된 택배노조 CJ대한통운 세종지회는 조치원·신세종 대리점 대표와 단체교섭을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노동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했다. 조치원·신세종 대리점 택배노조 조합원들은 각각 지난해 12월 말, 지난 2월 초부터 전면파업을 했다. 대리점연합회와 노조가 공동합의를 도출한 3월2일 이후에는 토요일이나 월요일에 근무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분파업을 했다. 복수노조는 올해 3월26일 국민노조 산하 택배산업본부 세종지부 조치원지회와 신세종지회가 설립되면서 만들어졌다.
국민노조가 3월31일 대리점주에게 교섭요구를 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진행됐다. 사용자측은 4월16일 국민노조를 과반수노조로 확정 공고했고, 단체교섭을 통해 6월17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택배노조가 과반수노조 이의신청을 제기해 국민노조가 조합원 명부와 조합비 납부 내역을 충남지노위에 제출하면서 대리점주가 복수노조 설립을 계획·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치원대리점 대표와, 신세종대리점 대표 및 배우자가 비조합원들에게 국민노조 가입을 권유하고 조합비를 대신 납부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택배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통화 내용을 보면 복수의 비조합원들은 “그거(노조) 들어야 된다고 해서요. 어차피 돈도 안 내고 제가” “소장이 도와 달라 했어요. 노조 사람들이랑 싸워야 된다고. (…) 쟁의권을 뺏어 온다고” 등의 발언을 했다.
CJ대한통운 세종서브터미널 산하 대리점주들을 대표해 사용자측 교섭위원으로도 활동한 이아무개씨는 조치원·신세종대리점에 국민노조가 설립된 뒤 택배노조에 쟁의행위 중단을 조건으로 국민노조 세종지부·지회 설립 취소를 논의하기도 했다. 이복규 택배노조 충청지부장은 “이씨가 ‘6월 말 부속합의서 관련 논의가 끝날 때까지 파업이나 태업을 중단해 달라. 그러면 복수노조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국민노조 세종지부장으로 해당 대리점과 단협 체결을 주도하기도 했다.
사용자측은 노조 주장이 모두 추정과 추측일 뿐이고, 택배노조를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지부장이 된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며 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충남지노위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충남지노위는 “택배노조의 쟁의권과 교섭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씨를 대표 또는 대리인으로 내세워 국민노조 지부·지회 설립을 계획·주도했고 근로자들에게 국민노조에 가입할 것을 권유·유도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러한 행위 등은 부당노동행위 의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원상회복 위해서는 노조설립 무효 판단 필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았는데도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다. 택배노조는 국민노조 조치원지회·신세종지회 설립이 무효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가 아니라는 취지의 구제명령을 함께 청구했지만 충남지노위는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 처분권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기각했다. 택배노조 충청지부에 따르면 해당 대리점에서 국민노조는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단협 효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복규 지부장은 “국민노조가 체결한 단협은 쟁의행위 기간에도 당일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계약해지를 쉽게 하는 등 표준계약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윤희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노조설립 무효에 대해서는 다른 기관의 판단을 구해야 된다고 판정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조 노무사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내면 노동위에서 구제명령을 할 때 명령의 방식과 내용은 노동위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한다는 판례가 있다”며 “택배노조가 부당하게 빼앗긴 쟁의권과 교섭권을 되찾기 위해 구제신청을 낸 만큼 원상회복을 위해서는 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단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은 중노위에서 다시 다뤄질 예정이지만 노조설립 무효 판단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노동위 구제명령이 아니면 택배노조가 국민노조를 상대로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을 별도로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유성기업과 유성기업노조를 상대로 2013년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을 냈는데 8년 만에 대법원에서 설립 자체를 무효로 한다는 확정 판결이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노조 설립신고에 대한 수리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할 수도 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해 3월 대양판지노조에 대해 설립신고 취소처분을 내린 바 있다. 노동부가 설립신고 취소처분을 내리면 교섭대표노조 지위와 단협도 무효가 된다. 택배노조 충청지부는 조만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조치원·신세종 대리점 대표와 이씨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고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