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인 판단으로 공공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지침으로 형해화하는 기획재정부 행태를 제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헌재는 두 차례에 걸쳐 노동자쪽 헌법소원을 각하했는데, 노동자 단결권·단체교섭권과 관련한 기본협약인 국제노동기구(ILO) 87호·98호 협약이 발효된 만큼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쪽은 국가가 재정을 뒷받침하고 있으므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보장과 ILO 핵심협약 준수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노총 공공부문노조협의회(한공노협)와 김성환·김영주·김주영·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노사 단체협약 형해화 문제제기에 법원 답변 회피”
하 변호사는 “현행 법령 중 어떤 것도 공공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하지 않고 있음에도 기재부는 혁신 또는 예산운용지침 형태로 공공기관 노사의 단체협약을 무력화·형해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3년과 2001년 헌법소원 방식의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우리 사법부는 모두 행정부 지침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어 헌법소원 다툼의 대상이 아니며 각하하는 방식으로 판단을 회피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ILO 기본협약이 비준·발효해 국내법과 같은 지위를 가지게 된 상황에서 사법부에도 ILO가 제시한 국제노동기준을 존중할 책임이 생긴 만큼 법 기술적 관점을 넘어 본안 내용을 심도 있게 검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노동자들은 최근 잇따라 법원에 기재부의 ‘지침행정’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공노협은 지난해 12월 기재부의 일방적인 경영평가편람 수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행정법원에 냈다. 지난 1월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비롯한 기재부 관료를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2월에는 헌재에 기재부의 지침행정이 헌법상 노동자의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20일에는 기재부를 ILO에 제소했다. 공공운수노조도 이미 ILO에 기재부를 제소한 상태여서 양대 노총 모두 기재부의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한 행정에 대한 ILO의 조사를 요구한 셈이 됐다.
쟁송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은 같다. 기재부가 연말 수립하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공공노동자의 임금·노동조건·복리후생을 사실상 결정해 공공기관 노사 자율의 단체교섭과 그 결과로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쟁점은 기재부 지침이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느냐다. 하 변호사는 “지침에 의해 단체교섭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될 뿐 아니라 지침에 의해 이미 체결한 단협의 효력이 무효화하거나 미래의 단협 내용까지 제한하는 권한이 부여되는 것은 공익보호를 위해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과잉금지 원칙 위배”라고 설명했다.
“ILO 87·98호 협약은 군대·경찰 빼고 모두 해당”
이런 주장에 대한 ILO의 해석은 어떨까.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는 “87호·98호 협약은 군대와 경찰을 뺀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므로 공공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제약하는 것은 보편적 자유에 대한 침해로 해석할 것”이라며 “사실상 기재부가 공공기관을 실효 지배하는 사용자로서의 실질을 행사하는 만큼 아예 공공산별 노동계와 정부가 집단교섭을 할 필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ILO는 태생적으로 노동자뿐 아니라 자본과 정부가 함께 국제적 노동기준을 합의해 온 기구로 노동자 편향적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매우 보수적 기준을 제시해 온 유엔 산하기구”라며 “우리와 유사한 경제시스템을 가졌다는 미국·일본·영국에서도 공공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형해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ILO 제소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에 추가 기소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이나 한미·한EU 자유무역협정(FTA) 노동장 위반 제소 등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윤 컨설턴트는 “공공기관 대부분은 외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 형태를 띤다”며 “다시 말해 ILO뿐 아니라 국제적인 통상조약의 규범 위반 소지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국가에 관리·감독 권한 있다” 사실상 자백?
노동계의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여전히 ‘곳간지기로서 책임’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기재부와 고용노동부 관료는 공통적으로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지침에 따른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지침 등이 공권력으로서 공공기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자백한 셈이나 다름없다.
윤영수 기재부 공공노사정책팀장은 정부의 관리·감독 책임 강조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상 기관의 책임·자율경영 원칙에 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법의 문구를 한쪽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만 해석하는 것”이라며 “사용자쪽 입장은 다를 수도 있고 물리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원론적으로 자율과 책임이 함께 따르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