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

통계적 편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대상을 반복적으로 추적 조사하는 패널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노동조합 조직률의 증가는 산업재해의 감소와 통계적 관련을 보인다. 또한 노조는 산재 은폐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인데, 본 분석에서 평균적으로 산업재해 3분의 2가량이 은폐됨을 고려하면 노조 조직화는 산업재해 및 산업재해 은폐를 줄이는데 효과적인 방안 중 하나일 수 있다.

배경

전통적인 직장생활이나 노동의 개념이 변화해 이제 더 이상 평생직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 방역을 계기로 재택근무가 광범위하게 도입됐다고는 하지만 직장은 여전히 평범한 노동자가 일생에서 가정만큼이나 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특히 가정에서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노동하는 대다수 인간은 작업현장에서 인생의 활동시간 대다수를 소비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현장의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것, 다시 말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하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할 권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비율이 낮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그러한 중대재해가 비정규직 등 취약노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소위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은폐가 거의 불가능한 중대재해를 제외한, 즉 사망사고 이외의 산업재해는 대단한 규모로 은폐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고에 대한 징후와 경미한 사고, 그리고 대형사고의 비율이 300 : 29 : 1의 비율로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한국의 산업재해 통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중대재해 발생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지만 경상 등의 산업재해는 OECD 평균보다 낮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 이외의 산재가 얼마나 은폐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대중조직으로서 고용보장과 임금인상을 핵심적인 활동으로 한다. 조합원들이 일하는 작업장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역시 노조의 기본활동인데, 대부분의 노조에서 산업안전 분야를 담당하는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노조가 산업재해 발생, 그리고 산업재해 은폐와 어떤 관련을 보이는가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논란이 있다.

본 분석은 앞의 여러 복잡한 문제, 즉 산재 발생과 산재 은폐, 노동조합의 역할 등에 대한 통계적 검토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사업체 단위 패널자료를 활용해 ①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가 얼마나 은폐되고 있으며 ② 산업재해의 발생과 ③ 산업재해의 은폐에 노동조합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정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산재 3분의 2는 은폐된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가 통계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우선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때 산업재해란 산업현장에서 업무와 관련해 발생된 사고와 작업장의 환경이나 직무 내용으로 인해 발생했을 인과성이 인정되는 질병 모두를 포괄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러 가지 이유로 산업재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하기보다는 민간 의료보험으로 치료하고 발생한 자기부담금을 사업주가 사후에 지급해 주는 공상처리가 널리 선호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패널조사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우선 업무와 관련한 사고나 질병이 몇 명에게 발생했는지 물은 후 이 중 산재 인정을 받은 건(명)수를 질문했다. 이때 앞의 질문이 산업재해 발생의 최대치, 뒤의 질문이 산업재해 발생의 최소치라 할 수 있다. 즉 두 수치 간의 격차가 산업재해 발생이 인정되지 않고 묵히는 은폐의 규모라고 판단할 수 있다. 동일 사업체를 대상으로 격년 주기로 반복적인 추적조사를 시행하는 사업체패널조사 2011년부터 2017년까지의 4개년도 자료를 활용해 계산했더니 업무와 관련한 사고자나 질병자가 존재한 사업체들에서 평균적인 산업재해율은 0.032였고 이 중 평균적인 산재 인정비율은 0.011로 나타나 나머지 0.021의 경우, 즉 1건의 산업재해 발생에 대해 66.7%는 산재 인정을 받지 않고 은폐됨을 알 수 있다.

노조는 산재 발생을 감소시킨다

노동조합이 산업재해를 줄이느냐 늘리느냐는 상반되는 이론적 주장과 실증 결과가 공존한다. 우선 노조가 산업안전을 강화하라는 압력을 가해 안전설비나 장비가 잘 보완돼 결과적으로 산업안전의 수준을 높이고 산업재해 자체의 발생을 감소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통계자료, 특히 횡단면 자료를 회귀분석해 보면 오히려 노조가 있는 경우 산업재해율이 높게 보고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결과가 발견되는 이유는 노조가 산업재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되는 곳에 노조가 조직되기 쉬운 관계, 즉 일종의 역의 인과관계가 이러한 통계적 관련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노조가 산업재해를 공상처리 등으로 해결하지 않고 산업재해로 인정되게끔 압력을 가하므로, 즉 산재 은폐를 축소하게 하는 일종의 보고 효과 혹은 발굴 효과를 발생시켜 노조부문의 산업재해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통계적 쟁점을 검증해 보기 위해 사업체패널조사를 활용해 추정한 결과, 노조 조직률의 증가는 산업재해율을 유의하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나 노조는 산업안전에 대한 압력을 강화시켜 산업재해 자체의 발생비율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의 변수들 중 노동시간과 비정규직 비율 역시 산업재해율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정(+)의 관련을 보여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정규직 활용이 늘어날수록 산업재해 발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음 또한 확인된다.

노조는 산재 은폐를 줄인다

노동조합이 평균적인 산업재해의 발생을 줄인다면, 발생된 산업재해의 은폐에 대해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마찬가지로 사업체패널조사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응답한 사업체들을 대상으로 산재 은폐의 정도에 미치는 여러 변수들의 효과를 패널고정효과로 추정했더니 노동조합 조직률의 증가는 산업재해 은폐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통계적 관련을 보였다. 즉 노조 조직률의 증가는 산업재해 은폐의 감소와 관련돼 있고, 노조는 산업재해 은폐를 줄여 내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책적 함의
노조 조직화 진전은 산재 감소 대안 중 하나

여러 선행 연구들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가 광범위하게 은폐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산업재해 은폐는 사용자가 전액 부담해야 할 비용이 임금노동자뿐 아니라 자영업자, 소상공인까지 포함하는 전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충당됨으로써 자원 배분의 왜곡과 불합리를 조장한다. 산업재해의 은폐를 근절하기 위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산업재해의 발생 자체를 줄이고 발생된 산업재해의 은폐를 줄이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 조직화를 진전시키는 것은 안전한 작업장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