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파견된 그 간부, 임금 2억 날린 기막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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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23-06-12본문
산별노조 파견된 그 간부, 임금 2억 날린 기막힌 사연
한국노총 산하 모 산별 노조연맹 위원장은 1년 넘게 그가 소속된 회사로부터 월급을 못 받았다. 그가 몸담은 회사는 세계 굴지의 반도체 회사다. 평균 연봉은 1억원이 넘는다. 근속연수가 30년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그는 2억원 안팎의 연봉을 수령하지 못한 셈이다.
노조가 상급단체 파견된 연맹 위원장 임금 지급 막아
그는 산별 노조연맹의 위원장이지만 엄연히 반도체 회사의 직원이다. 그런 그가 2021년 1월 11일부터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됐다. 그는 회사 일을 하지 않고 노조 업무에 전념하는 노조 전임자다. 노조 전임자가 월급을 받으려면 근로시간 면제(이하 타임오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한데 그는 2021년 1월부터 타임오프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연히 회사는 임금을 줄 의무가 없다. 결국 연맹에서 자체 운영비로 일부를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무일푼 직원으로 전락한 결정적인 계기는 회사의 노조 집행부가 바뀌면서다. 신임 노조 집행부는 ‘현장 조합원 중심의 타임오프 확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공약에 따라 상급단체인 산별 노조연맹체에 파견된 그의 타임오프를 거둬들였다. 대신 이 회사 노조는 그에게 배정됐던 타임오프를 현장 노조로 돌려 산업안전, 조합원 고충처리 활동 등에 썼다. 노조가 자체적으로 임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으니 하소연할 곳도 없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8월 18일부터 다시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합원 수가 늘어나면서 타임오프 한도가 늘어나자 증가분을, 산별 노조연맹 위원장으로 상급단체에 파견 나간 그에게 배정하는 배려를 했기 때문이다. 타임오프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얘기다.
타임오프 갈등…건보공단 이사장, 노조원에 뺨 맞아
2000년 7월 1일 국민건강보험 이사장이 노조원에게 둘러싸인 채 노조 위원장으로부터 두 차례나 뺨을 맞았다. 이런 폭력 사태가 발생한 이유 중 하나는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노조 전임자를 늘리려던 노조와 전임자를 줄이려는 공단 측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당초 공단과 노조는 각 지역의 노조 간부 활동시간(지금의 타임오프)을 6시간에서 8시간으로 두 시간 연장하는 방안에 의견이 접근했다. 여기에 당시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다. “표면적으로 2시간 활동시간을 늘리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노조 전임자가 1000명 넘게 늘어나는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한다”면서다. 전국의 각 시·군·구에서 노조 간부가 “노조 업무를 보러 간다”며 2시간 자리를 비우면, 단순히 2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노조 업무를 본다며 2시간 자리를 비운 사람이 2시간 뒤에 올까요? 다른 직원들은 그가 2시간 뒤에 복귀하는 것을 반길까요? 사무실에 복귀하지 않고 그냥 노조 사무실에 있도록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암묵적으로 2시간짜리 부분 전임자가 사실은 풀타임 전임자로 둔갑한다. 실제로 그런 상황은 일반 기업체는 물론 공기업에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노조 전임자를 늘리는 편법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당시 해당 노조의 전임자는 43명이었다. 그런데 전국 시·군·구 지역의료보험 노조에서 2시간 타임오프를 편법으로 적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산술적으로 1400여 명의 노조 전임자가 불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일하지 않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만 받아 챙기는 사람이 확 늘어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타임오프 2시간 연장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조가 공단 이사장실에 난입해 형광등을 깨뜨리고, 이사장을 폭행하는 지경으로 번졌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선진국, 회사가 전임자에 월급 주면 “자주성 침해”
원래 노조는 그 개념상 사용자로부터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 회사에 손을 벌려 그 돈으로 노조를 운영하면 회사에 종속될 위험에 빠진다. 일하지 않고 노조 업무만 전담하는 전임자의 임금을 노조가 부담하는 것은 이런 이치에서다. 외국에선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임금은 물론 그 어떤 혜택을 제공받는 것에 대해 극도로 경계한다. 만약 회사가 임금을 주겠다고 나서면 이를 ‘노조 탄압’ ‘노조 자주성 훼손’이라며 강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한국은 딴판이다. 전임자 급여를 회사에서 거리낌 없이 받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이런 불합리한 관행은 지속됐다.
이런 관행을 바로잡고자 1997년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이 노조법에 신설됐다. 하지만 시행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조가 “회사에서 돈을 대라”며 떼를 썼기 때문이다. 규정 도입 이후 무려 세 차례에 걸쳐 13년 동안 시행이 미뤄졌다. 희한한 건 시행이 유예된 기간 동안 노사 자율로 노조 전임자를 축소하도록 했지만, 오히려 전임자는 계속 늘어났다는 점이다. 노조에 지출되는 회삿돈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이 산업현장에서 거꾸로 작동했던 셈이다.
한편으론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중소 규모 노조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선 조합원 분산으로 노조의 재정이 더 취약해져 노조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한국은 “전임자 월급 달라” 관행…타임오프로 개선 첫발
이에 따라 노사정이 협의해 2009년 12월 4일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을 그대로 두고, 완충형으로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도입했다.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노조의 활동 즉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의 업무를 하는 전임자에게는 임금을 회사가 예전처럼 계속 지급하도록 했다.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회사의 노조 재정·운용에 대한 개입이지만, 불합리한 관행 개선의 첫발을 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다만 노조 관계자 모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는 못하게 제한했다. 조합원 수에 따라 임금을 받으면서 노조 업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조합원 규모가 99명 이하인 노조에 연간 최대 2000시간, 1만5000명 이상이면 최대 3만6000시간만 일하지 않아도 임금을 지급하는, 즉 근로시간을 면제해주는 식이다. 노조는 이 시간 범위 안에서 사용하면 된다. 전임자에게 면제시간을 몰아줘도 되고, 파트타임으로 쪼개서 몇 명이 나눠 써도 된다. 나머지 시간은 일해야 월급이 나온다.
이 제도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2021년 회사와 노조를 대상으로 타임오프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랬더니 타임오프 도입 이후 풀타임 노조 전임자와 파트타임 전임자가 모두 늘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됐다. 풀타임 전임자는 1.32명에서 1.63명으로, 부분 전임자는 0.57명에서 1.83명으로 증가했다(회사 측 파악). 공식적으로 회사가 돈을 대주게 하니 인원이 불어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회사가 돈 대니 전임자 늘어…유럽의 7.5배
고용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노조 전임자는 7500명 안팎이다. 노조 전임자 1명당 평균 조합원 수는 200명 정도다. 부분 전임자까지 포함하면 조합원 170여 명당 1명꼴이다. 일본이 조합원 600명, 미국이 1000명, 유럽이 1500명당 노조 전임자 1명인 것에 비하면 ‘일하지 않고 노조 일만 보는 노조 간부’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 면제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단체협약으로 정해진 2021년 전 사업장 평균 근로시간 면제 시간은 4255시간이다. 이는 2013년 조사 당시(3736시간)보다 13.9%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조합원 5000인 이상 사업장에서 23.5%p(5453시간)나 늘었다. 50인 미만 사업장도 32.4%p 늘었지만, 증가분은 381시간에 불과하다. 조합원 수 5000명 이상 사업장 3곳과 조합원 수 1만5000명 이상 사업장 한 곳은 면제 한도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외국에선 노조비 등 자체 재정으로 살림을 꾸리기 때문에 전임자도 최소한으로 둔다”며 “한국은 기업이 부담하고, 그나마 노조 전임자에게 지급되는 월평균 급여가 우리나라 모든 산업의 일반 근로자 월평균 임금보다 높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의 경우 노조가 운용할 수 있는 돈이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그런데도 파업이 잦은 현실을 고려하면 회사가 돈을 퍼주고 뺨 맞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수백억원 가진 노조도 전임자 임금 받아”
노사가 협의해서 정한 면제 시간은 법에 명시된 면제 한도 대비 50인 미만은 74.9~77.9% 선에서 정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에 5000인 이상 사업장은 100%가 넘었다. 특히 실제 사용한 시간을 조사했더니 조합원 100인 미만 사업장의 실제 사용 시간이 현저하게 낮았다. 50인 미만은 정해진 시간의 45.9%만 썼고, 50~99인은 65.8% 수준이었다. 1000인 이상 사업장은 정해진 면제 시간의 97.8~100%를 사용했다. 노조 활동이나 노동운동이 대기업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통계다. 또 상급단체에 파견하는 노조 간부가 많을수록 실제 사용한 근로시간 면제 시간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타임오프 제도는 기본적으로 노조가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자체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이를 확립해 나가기 위한 징검다리 제도다. 한국적 특성을 반영한 조치일 뿐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제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노조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게 순리다. 한데 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된 뒤 조합비를 인상한 곳은 전체의 7.1%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급 전임자 급여를 충당하기 위한 재정 확충 사업을 하는 곳도 적다. 겨우 18.4%만 재정 확충에 나섰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무급 전임자의 급여를 아직도 회사에서 받거나(22.1%) 기본급을 회사에 의존(2.6%)하는 경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모두 법 위반에 해당한다.
“자립 가능한 대기업 노조, 타임오프 중단해야”
노동계는 수년 전부터 “타임오프 한도를 늘려라” “상급단체에 파견 나간 노조 간부는 한도에서 예외로 하라”는 등 일 안 하고 임금을 받는 전임자 증대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선진국의 잣대로 보면 노조 자주성을 스스로 팽개치는 요구다.
경사노위의 타임오프 실태조사에 참여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타임오프는 지속 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노조를 위한 정규 제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특히 자립이 가능한 노조(대기업)가 타임오프를 하는 것은 노조의 개념이나 기능적 측면에서 맞지 않다. 노조는 외부의 지배·개입 없이 자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회사로부터 원조를 받는 것은 사용자의 개입 위험을 초래하고, 자주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근로자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서도 노조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을 감안해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또한 한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대기업을 비롯한 자립이 가능한 사업장은 없애는 게 맞다. 타임오프는 노조에 추가 혜택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말까지 1000인 이상 사업장 510개소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용부 관계자는 “조사 대상 노조는 자체 재정으로 자립이 가능하면서 노조의 힘이 센 곳”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노사 합의를 내세우지만, 힘으로 근로시간 면제자를 늘리고, 월급을 받아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읽힌다.
몇 년 전 만난 독일 자동차 회사 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노조가 계약직 근로자를 채용해서 노조 업무의 상당 부분을 맡긴다. 노조 업무만 전담하는 전임자는 최소한으로 둔다. 물론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부담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 방문객은 노조의 안내를 받아 회사 홍보 영상과 신차 설명, 공장 견학 등을 한다. 이때 방문객을 안내하는 사람은 노조가 채용한 계약직 노조 직원이다. 회사 제품이 잘 팔려야 근로자가 산다는, 그걸 위한 활동 또한 노조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한국 노조가 “타임오프를 늘리라” “노사가 합의해서 주는 것이므로 이를 건드리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다”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정말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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