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삼성애니카손해사정 사측이 사원협의회인 한마음협의회와 체결한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상 단체협약이 아니라는 검찰 판단이 나왔다. 사원협의회와 교섭해 임금 수준 및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삼성그룹 계열사 행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4일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노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이 5월 말 구본열 전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노조는 사측이 노조간부 10명의 임금에서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회비를 일괄공제한 것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임금 전액불 지급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구 전 대표를 고소·고발했다.

검찰의 판단은 2년2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다. 검찰은 노사가 조합비 일괄공제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조쪽에서 한마음협의회비 임의 공제 중단을 요구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공제한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봤다. 하지만 단체협약 체결 전 기간 임의공제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오랜 세월 한마음협의회 회비가 공제됐고, 직원들이 이같은 사실을 인지했으나 집단적·명시적 이의제기는 없었다는 점이 반영됐다.

사측은 한마음협의회는 법외노조로 노조로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췄고, 회사와 체결한 ‘근로조건에관한협약’은 단체협약으로 볼 수 있어 위 협약에 따라 회비를 공제한 것은 적법하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애니카손해사정과 한마음협의회가 체결한 ‘근로조건에관한협약’은 유효한 단체협약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삼성화재쪽은 “구 전 대표가 정식 재판을 청구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 같은 판단은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삼성은 현재 사원협의회에 근로자단체의 대표성을 부여하고 있고 오히려 노조가 설립돼 있는 계열사가 많은데도 사원협의회와 우선 교섭하고 있다”며 “한마음협의회가 노조 설립 신고를 하지 않아 노조가 아닌 것은 당연한데 실체적으로도 노조가 아니다. 자주·독립성이 없는 단체라고 한 것”고 설명했다. 문 변호사는 “사측이 사원협의회와 교섭을 하는 것은 원래도 말이 안 됐지만, 검사가 쓴 공소장이나 불기소 이유서에 자세히 설시가 돼 있어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나 삼성화재처럼 삼성그룹 계열사 노조들은 사측이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조를 무력화한다고 비판해 왔다.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임금 수준을 노조와의 교섭에서 고수하는 식이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의 모회사 삼성화재는 삼성화재노조와 단체교섭 중지 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삼성화재는 삼성화재리본노조(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와 지난 5월 임금협약을 체결했는데, 삼성화재노조는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에서 노조로 전환한 삼성화재리본노조가 삼성화재노조 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육성된 단체라고 보고 있다. 2012년 드러난 ‘S그룹 노사전략’에는 사원협의회를 노조의 대항마로 활용하고,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