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복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만든 ‘공동근로복지기금 활성화 대책’을 정부가 시행 3년도 안 돼 슬그머니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19년 공동근로복지기금 사업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 출연금 매칭 지원율을 50%에서 100%로 상향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신청이 몰리자 지원 규모에 차등을 두고, 지원금도 예고 없이 축소했다.
‘출연금’ 기준으로 하는 정부지원율
공단 ‘지원신청금액’ 기준으로 바꿔
24일 근로복지공단이 올해부터 공동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정부지원을 당초 발표한 출연금 대비 100%가 아닌, 0~100%로 차등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올해 근로복지기금 지원사업 시행계획에서는 정부 지원율을 ‘출연금’을 기준으로 공고했는데 실제 지원율은 출연금이 아닌 ‘지원신청 금액’을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기금 지원사업 업무처리 규정’에는 정부 지원율을 기금 ‘출연금’을 기준으로 하도록 했는데, 규정 개정으로 모수를 바꿔 지원금 규모를 축소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단은 지난해에도 노동자 1명당 지원금 규모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지원 규모를 축소해 중소기업 노사의 원성을 샀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복지 강화를 위해 2016년 1월 도입한 공동근로복지기금은 원·하청 또는 동종업종 둘 이상의 사업주가 함께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해 노동자의 주택 구입이나 장학금, 경조금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당시 1천명 이상 대기업은 절반 이상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해 복지사업을 하지만, 300명 미만 사업장은 기금 설립률이 0.3%에 불과해 공동근로복지기금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년에 20개도 안 되던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
‘출연금 100% 정부 지원’ 발표하자 10배 성장
공동근로복지기금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은 도입 첫 해인 2016년 14곳, 2017년 17곳, 2018년 18곳이 설립되는 데 그쳤다. 정부가 2019년 9월 ‘공동근로복지기금 활성화 대책’을 꺼내 든 배경이다.
대기업(원청)이 공동근로복지기금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사내하청)공동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고, 정부의 공동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직접 재정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기존에 출연금의 50% 범위에서 3년간 누적 2억원에 불과했던 정부 지원을 ‘출연금 대비 100%’로 상향하고 5년간 최대 2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2020년 한 해 동안 만들어진 공동근로복지기금만 182개였다. 2016년 제도 도입 이후 4년 동안 만들어진 공동근로복지기금(77개)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혜택을 받은 노동자도 2019년 1만2천783명에서 2020년 14만6천176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공동근로복지기금 ‘흥행’은 성공했지만…
신청이 몰리자 정부는 공동근로복지기금 관련 예산을 2020년 142억원에서 2021년 292억원으로 150억원 증액했다. 공동근로복지기금 예산은 복권 판매 수입에서 나오는 ‘근로복지진흥기금’으로 충당한다.
공동근로복지기금 활성화 대책으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충분한 예산 확보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당초 발표했던 ‘출연금의 100%’ 지원을 ‘평가점수에 따른 차등지원’으로 바꿨다.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공동근로복지기금 참여 기업 규모와 노동자수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평균 점수가 80점 이상인 경우만 출연금액의 100%를 지원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60~80점은 출연금액의 75%, 40~60점은 50%, 그 이하는 지원을 배제했다.
또 지난해는 노동자 간 형평성을 이유로 노동자 1명당 지원 한도를 노동부 기업체 노동비용조사에서 산출하는 ‘법정 외 복지비용’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올해 공동근로복지기금 사업 예산은 16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27억원 감액됐다. 사정이 더 어려워지자 공단은 정부 지원율을 출연금이 아닌 ‘지원신청금’으로 축소하는 꼼수를 썼다.
올해 예산 165억원으로 전년 대비 127억원 삭감
중소기업쪽 “공단, 자신들이 만든 규정도 안 지켜”
10여개 중소기업이 참여해 설립한 A공동근로복지기금은 대표적인 지원 축소 피해사례다. A기금은 지난해 출연금을 3억원 규모로 약정하면, 정부에서 출연금 100%인 3억원을 지원받아 총 6억원 규모로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신청했다. 그런데 정부 지원은 1억1천만원에 불과했다. 노동자 1명당 법정 외 복지비용(2021년 85만원)의 50%만 지원한다는 사실을 심사가 끝난 뒤에서야 듣게 됐다.
올해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법정 외 복지비용(2022년 88만8천원)을 고려해 출연금액을 2억6천만원으로 약정하고 정부 지원을 신청했는데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억5천여만원에 불과했다. A기금의 평가점수가 60점대여서 규정대로라면 출연금액의 75%인 1억9천500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출연금의 56% 수준만 지원된 것이다. 이유는 공단에서 출연금액이 아니라 지원신청 금액(1억9천500만원)의 75%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애초 출연금의 75%를 지원신청금으로 작성했는데, 공단은 지원신청 금액의 75%를 적용해 지원액을 규정보다 대폭 줄였다.
A기금 관계자는 “공단이 만든 규정과 사전에 공표한 대로 정부 지원을 기대했는데 자꾸만 지원이 줄어드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탈퇴하고 싶어도 규정상 기존 출연금을 사내복지기금으로 전환해야만 가능한데, 고작 1천만~2천만원 정도에 불과한 기금으로 무슨 복지사업을 할 수 있겠냐”며 대책을 호소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공동근로복지기금 사업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공동기금을 출연하는 것이 목적이고 정부 지원은 보조적 수단에 불과한데 정부지원금만 기대하면서 출연은 적게 하려는 기업들이 있어 출연금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도록 평가항목을 바꾸고 평가표도 사전에 공개했다”며 정부 지원을 임의로 줄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규정의 문구상에는 출연금액 대비 차등 지원하도록 돼 있지만 사실상 지원신청 금액을 평가해서 이를 기준으로 정부 지원율을 정한다고 안내했다”며 “지난 2년간 설립된 공동근로복지기금수는 많고 예산은 한정돼 있어서 차등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부 고시나 공단 자체 규정에도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