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적용하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 논의를 가속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민간부문에서도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를 정교하게 운용하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노동계가 후속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26일 대법원 판결 이후 노동계 반응을 종합하면 이날 임금피크제 관련 판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금융업과 공공부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15년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하며 공공부문의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했다.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성과연봉제 도입 등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부분 노동정책은 폐지됐지만 임금피크제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과 청년채용 확대의 조화를 위해 노사정 합의를 통해 도입한 것”이라며 “고용친화적인 정년제도 개편을 위해 반드시 유지돼야 할 제도”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는 직무급제와도 관계가 있다. 2015년 정부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능력과 경험이 기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라고 공공기관에 권고한 바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 직무급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입장은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맞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정과제에 세대상생형 임금체계를 포함했다.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는 양대 노총 등 노동계가 반대해 온 데다가 법원 판결까지 나왔으니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으로 하되 아예 직무급제로 가 보자고 정부가 나설 수 있다”며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싶은 정부에 큰 유인책이 생겼다”고 우려했다.
금융노동계는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도입 기준에 맞춰 회사들이 기존 제도 손질을 시도하리라 전망한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업무량을 축소해 임금을 줄이거나 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준수해 정교하게 임금피크제를 운용하는 식으로 기업이 대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