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방만하게 경영해 부채를 키웠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공공기관 때리기에 나선 것은 결국 공공의 영역을 시장에 넘겨주는 민영화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고 지적됐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공기관 착한부채 문제없다’를 주제로 열린 9차 공공노동포럼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포럼은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공노련이 함께 주관했다.
국내 공공기관 부채 감소, 민간보다 빨라
이 수석연구위원은 “부채를 토대로 한 재정 건전성 여부는 경제규모 성장에 따라 늘어나는 부채의 규모보다 부채의 비율로 판단하는 게 더 적절하다”며 “공공기관의 부채규모는 증가했지만 부채비율은 2012년 220%에서 지난해 151%로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국내 공공기관의 부채비율 감소 폭은 민간기업보다 빠르다. 2012년 220%였던 공공기관 부채비율이 2020년 151,9%로 감소하는 동안 민간기업 부채비율은 147.6%에서 118.3%로 더디게 낮아졌다.
게다가 공공기관 부채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한국전력공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은 2020년 기준 143.1%로 민간기업에 더욱 근접한다. 놀라운 점은 한전과 함께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된 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광해광업공단·대한석탄공사를 모두 제외하면 오히려 민간기업보다 부채비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아직 민간기업의 전체 부채비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확언하긴 어렵지만 이들 5개 기관을 제외한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117.8%로 2020년 민간기업의 118.3%보다 낮다.
한전도 판관비율·평균 보수·복리후생비 ‘양호’
그렇다면 한전과 자원 관련 공공기관은 방만하게 운영한 것일까. 그렇게 판단하기도 어렵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방만경영의 잣대인 판매관리비 비율과 인건비·복리후생비 모두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며 “이들 수치가 정상인데도 방만경영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판매관리비 비율은 영업을 위해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느냐를 비율로 따지는 지표다. 민간기업의 판관비율은 2017년 16.9%에서 2020년 18.9%로 상승하는 추세다. 그러나 시장형 공기업의 판관비율은 같은 기간 4.5%에서 4.9%로 상승 폭이 작다. 게다가 지난해는 4.4%로 하락했다. 한전을 제외하면 지난해 시장형 공기업의 판매관리비율은 3.8%로 민간과 더욱 격차를 보였다. 한전 판매관리비율 역시 △2018년 4.3% △2019년 4.5% △2020년 4.6% △2021년 4.7%로 평균치와 큰 차이가 없이 관리되고 있다. 조직과 인력이 방만했다는 정부 지적과 달리 한전의 평균 보수·복리후생비는 횡보했다. 2017년 8천241만5천원이던 평균 보수는 지난해 8천496만2천원으로 소폭 증가했고 복리후생비도 같은 기간 550억5천681만4천원에서 572억3천314만9천원으로 늘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추이를 보면 인건비 역시 유의미한 변화가 없어 사실상 방만경영이라고 지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 구체적 사실 전달보다 프레이밍 택해”
그는 “재정 전문가로서 재정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방향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지난달 정부의 공공기관 방만경영 주장은 한두 가지 지표를 과장해서 일반화한 것으로, 구체적인 사실을 알리고 개선하기보다 선과 악의 프레임을 만들어 국민의 호응을 유도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박해철 위원장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방만경영 프레임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공공영역을 민간에 개방하기 위한 몸풀기일 것”이라며 “이미 한전을 대상으로 시작했고 다른 영역에서도 다양한 민영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