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우레탄폼을 이용해 방음공사를 하던 중 가스 폭발로 전신 화상을 입은 노동자에게 회사가 피해액의 70%를 배상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노동자 A(49)씨가 방음공사 업체 대표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산)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콘센트 플러그 뽑다 중화상
1·2심 법원 “노동능력 15% 상실”

사건은 일용직 노동자 A씨가 2018년 6월 방음공사를 하면서 시작됐다. B씨의 요청을 받아 다른 노동자와 함께 시흥시의 한 건물에서 천장 방음공사를 수행했다. 그런데 B씨는 LPG 가스로 충전된 우레탄폼 30개를 분사해 천장 내부를 메우라고 지시했다.

작업 과정에서 우레탄폼이 내뿜는 가연성 가스가 가득 찼고, A씨가 콘센트 플러그를 뽑는 순간 불꽃이 튀면서 가스가 폭발했다. A씨는 이 사고로 전신의 60%에 해당하는 중화상을 입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가 인정돼 휴업급여와 장해급여를 받았지만, 이와 별개로 B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B씨에게 A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B씨는 재판에서 콘센트에서 전기 코드를 뽑을 경우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연성 제품인 우레탄폼을 이용한 작업을 지시한 B씨로서는 충분한 환기가 이뤄지도록 사전에 조치해야 한다”며 “불꽃 등으로 가스가 연소될 경우에 대비해 작업자에게 보호장비를 착용하도록 지시하고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B씨가 안전한 작업 환경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작업을 지시한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A씨의 과실을 일부 인정해 B씨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A씨도 환기를 충분히 해 LPG 가스의 잔류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며 “화재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보호장구를 준비하거나 B씨에게 요청하는 등의 안전 도모를 소홀히 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손해액은 A씨의 노동능력을 근거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가 발생한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만 65세를 가동연한으로 봤다. 재판부는 “흉터가 업무능력을 심각하게 낮춘다고 보기는 어렵고, 직업에 불이익을 미치는 정도에 관한 자료가 없어 노동능력 상실률을 15%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A씨가 위자료를 청구한 부분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화재 위험이 높은 작업에 무방비 상태로 투입됐다가 사고가 발생한 점 △화상 정도가 심해 신체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정신적 고통도 클 것으로 보이는 점 △흉터 제거를 위해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

과거 ‘우레탄폼 사고’ 빈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 유족도 손배소

B씨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대법원도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A씨가 사고로 노동능력 15%를 잃었고, 화상 흉터 치료가 더 필요하며 B씨가 A씨의 손해에 책임져야 할 비율은 70%라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A씨 사고는 2020년 4월 대형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38명이 목숨을 잃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닮은 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족측은 당시 발주처의 공기단축 압박 때문에 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작업이 동시에 진행돼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와 감리단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산)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실제 우레탄폼은 화재에 매우 취약한 물질로 알려졌다. 산재 전문가들은 낮은 연소점으로 인해 가연성이 매우 높아 작은 불씨에도 큰 불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비롯해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2008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2014년)’ ‘용인 물류센터 화재 사고(2020년)’ 등이 우레탄폼으로 피해가 확산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