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임금피크제도 무효일까.”

입은 열지 않았지만 의문이 가득한 표정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11호를 가득 메웠다. 120명 넘게 모인 모 소속 사업장 관계자들이다. 이날 노조는 최근 대법원의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나이 차별이라는 판례를 분석하고, 향후 각 지부·노조의 대응을 모색하기 위한 설명회를 열었다. 관심은 뜨거웠다.

노조 조직 대상인 사무직과 금융·보험업종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산업이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6월 기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정년제도가 있는 우리나라 사업체 34만7천422곳 가운데 7만6천507곳(22%)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이 가운데 2만2천187곳(22.9%)이 금융·보험업이다.

“정년 연장해도 불이익 크면 무효”

모 노조 위원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전력거래소 임금피크제를 다툰 다른 하급심 판결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와 앞으로 계속 논쟁이 발생할 것”이라며 “설명회를 통해 충분히 내용을 공유하고 질문하면서 노동운동의 방향을 세우자”고 말했다.

이날 판례를 해설한 권두섭 변호사는 우선 임금피크제를 기계적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임금피크제 운용 방식을 두고 ‘정년보장형’ ‘정년연장형’ ‘고용보장형’으로 구분하는 것을 지적한 발언이다. 권 변호사는 “임금피크제 관련 연구에서 구분하는 방식이나 정년연장형은 반드시 유효하고, 정년보장형은 반드시 무효인 것은 아니다”며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사업장 상황을 사안별로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운용의 일반적 기준은 △나이에 따른 차별 목적의 타당성 △임금삭감 같은 불이익 정도 △불이익을 상쇄할 대상조치의 유무와 적정성 △목적에 부합한 감액 재원 활용이다. 만약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정년을 60세보다 많은 63세로 연장했더라도 불이익에 해당하는 임금삭감이 과했다면 두 요소를 비교·교량해 제도의 무효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나이뿐만 아니라 성과평가 연동해 임금 삭감한다면?

문제는 2016년을 전후해 임금피크제를 정년연장 방식으로 도입한 사례다. 이 노조 부위원장은 “2013년 국회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2016년 1월1일부터 일괄적으로 법적 정년을 60세로 상향하기로 하면서 2015년 내내 임금피크제 관련 갈등이 이어졌다”며 “2015년 12월31일부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한 노사 간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 조정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2016년 퇴직을 앞뒀다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정년을 연장한 노동자는 대상조치의 혜택을 본 셈이지만 그 이후 입사한 노동자는 임금피크제에 따른 손해만 예상할 뿐 정년연장의 혜택은 없는 셈이다. 권 변호사는 “정년을 법으로 연장한 이후 시간이 도과함에 따라 임금피크제의 대상조치로 정년을 상향한 조항은 의미가 많이 퇴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대 쟁점으로 부각할 불이익 정도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거웠다. 설명회에 참가한 한 노조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나이뿐만 아니라 업무 성과평가를 같이 연동해 임금을 삭감하고 있다”며 “이런 경우 임금피크제에 따른 불이익을 어느 정도로 측정해야 하느냐”고 궁금해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라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을 받기도 해 이를 보전하기 위한 보전수당을 신설해 지급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불이익 수준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임금과 연동해 지급받는 퇴직금 규모의 감소 같은 미래수익 감소의 불이익 부합 여부를 묻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지급받는 임금의 항목이 아니라 총액을 기준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수당이나 지원금이 있으면 이를 수령한 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과의 격차가 불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인사평가제도와 연동한 경우에도 임금피크제 적용 여부에 따른 임금격차 구간을 최저~최고등급으로 나눠 비교해 볼 것을 권했다.

“노사합의로 도입해 ‘문제제기’ 궁색” 토로

이날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을 끈 이슈는 소송 제기 여부다.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의 4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 단순히 제도가 무효일 뿐 아니라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위법’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때 시효는 10년이다. 그러나 권 변호사는 “논리적으로 위법상 손해배상을 주장할 수 있으나 임금피크제 관련한 법원의 경향성은 손해배상 여부보다 임금 문제로 보고 있다”며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자칫 기각될 우려도 있으므로 우선 내용증명을 통해 시효를 정지시키고 소송 여부를 판단하는 경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내용증명을 보내면 해당 행위에 대한 시효가 내용증명 송달일부터 6개월간 정지하므로 3년인 임금소송 시효를 3년6개월로 연장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노사합의로 도입한 제도를 노조가 무효라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사용자쪽과의 역학관계 안에서 ‘궁색한’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송을 바로 제기하기보다 특별교섭 요청을 통해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권 변호사를 비롯한 노조 법률원은 설명회가 끝난 뒤 즉석에서 현장 사례 관련 상담을 했는데 참석자들이 줄을 서는 모습도 연출됐다. 한 카드회사 지부장은 “임금의 불이익 정도를 어떻게 판단하고, 회사에 소송을 제기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설명회 이후 노조는 지부별 상황을 진단해 소송이나 교섭 요구 등을 별도로 분류해 지원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