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갑질119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희롱 방치·성차별 노동위원회 신고’ 캠페인을 벌였다. 


김서진(가명)씨는 지난해 초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피해를 입은 뒤 회사에 알리고, 상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 뒤 김씨는 회사에서 따돌림과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기존에 맡았던 업무에서 배제되고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인사담당자는 “이런 거 신고하면 회사생활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김씨는 관할 고용노동청에 사업주를 상대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진정을 제기했다.

노동청에 녹취록과 업무일지, 회사 메신저 내용까지 제출했지만 근로감독관이 1년 만에 내린 결론은 ‘(법) 위반 없음’이었다. 직장내 성희롱과 신고 후 회사가 한 불이익 조치 모두가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봤고 직장 상사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김씨는 “노동청의 판단이 수사기관과 정반대여도 ‘재진정’ 밖에는 구제 방법이 없다”며 “이미 노동청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진정을 넣어도 다른 결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직장내 괴롭힘 당해

김서진씨가 겪은 직장내 괴롭힘은 그만의 경험이 아니었다.

19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성희롱 신고자 10명 중 9명은 회사에 신고한 뒤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직장내 괴롭힘까지 겪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직장내 성희롱 제보 메일 205건을 분석한 결과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에는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할 때 사용자의 의무가 명시돼 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요청에 따른 근무장소의 변경 등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 △사건에 대한 조사 등이다. “불이익하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있다. 사용자가 이 같은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지금까지 김씨 같은 피해자는 노동부·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사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개정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면서 김씨와 같은 직장내 성희롱·괴롭힘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관문이 넓어졌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
“피해자 구제 관문·실익 커질 것”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노동위원회에 직접 시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과 같이 근로감독관 1명의 판단에만 기대지 않게 됐다. 성희롱 피해자는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받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는 시정신청이 접수되면 60일 이내에 심문회의를 개최해 차별이 인정되면 사업주에게 시정명령을 부과한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야 할 적절한 조치 의무는 바뀌지 않았지만, 여러 명의 전문위원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해야 할 조치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보다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장종수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피해자로서는 법 위반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여지가 하나 늘었다는 의미도 있다”며 “시정명령을 통해 배상 등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피해자가 얻게 될 실익이 늘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