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비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진병준 위원장이 시도했던 전국건설산업노조 정기대의원대회가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개회조차 하지 못했다. 조합원 직접투표 없이 위원장이 임명하는 대의원들이 참여하는 대대는 위법하다는 판단에서다.

23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제51민사부(부장판사 황정수)는 정아무개 조합원 등이 낸 대의원대회 소집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20일 인용했다. 진 위원장이 공고한 정기대대를 개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10억원대의 조합비 횡령 의혹을 받는 진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조직정상화 방안으로 제시한 사퇴 권고를 거부하며 직을 유지하고 있다. 16일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한 그는 23일 노조 정기대대를 열어 규약을 개정하고 대의원 의견에 따라 본인 거취를 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대대에서 재신임받아 기사회생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한국노총 내에서조차 나왔다. 대의원 상당수를 진 위원장이 임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진 위원장 중심의 노조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대대 개최와 대대에 상정할 안건을 결정한 중앙위원회 논의에서부터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중앙위는 대대의 개최를 결의하면서 규약에 따라 안건을 심의해야 함에도 이 사건 안건 대부분을 심의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중앙위원은 진 위원장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대의원 구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대의원들의 총원이나 배정에 관해 투명하게 공개돼 있지 않다”며 “채무자(진 위원장)의 대대 개최는 조합원인 채권자들의 대의원 선거권 및 피선거권, 조합의 모든 활동에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진 위원장 중심의 중앙위 논의는 부정되고, 대대 개최는 제동이 걸렸다. 노조 핵심 의사결정기구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자체 정상화 시도도 사실상 힘들게 됐다. 대대 논의 결과와 별도로 진 위원장 횡령 사건 대응방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던 한국노총은 조만간 조직제명 절차에 들어간다. 회원조합대표자회의를 열어 노조 제명안을 결정한 뒤 한국노총 대대에 부의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