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직장갑질119
정부가 민법에 ‘인격권’ 조항을 명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인격권’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신체·건강·자유·명예·사생활·성명·초상·개인정보 등과 같은 인격적 이익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말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직장내 괴롭힘이나 사생활 침해 등 타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에 민사상 책임을 묻기 쉬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판례를 통해 제한적으로 인정됐던 인격권이 법률에 명시되는 것은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지 64년 만이다.
법무부 “인격권·예방청구권 명문화”
침해 사전 예방, 법인도 인격권 주체
법무부는 5일 오전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인격권과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법무자문위원회의 ‘미래시민법포럼’ 인격권 분과위원회에서 논의해 제안된 법안을 기초로 마련됐다.
‘인격권’은 신설되는 민법 3조1항에 규정될 전망이다. 해당 조항에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자유·명예·사생활·성명·초상·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를 인격권으로 명시한다. 법무부는 “어떤 인격적 이익이 인격권으로 보호될 수 있는지를 예시해 규정하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인격 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조항도 민법 3조2항(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에 담긴다. 법무부는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사후적 손해배상 청구권만으로는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인격권 침해의 중지를 청구하거나 필요시 사전적으로 그 침해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사람이 아닌 ‘법인’도 별도의 준용 규정(34조2항)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법인 역시 성질에 반하지 않는 이상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법무부는 “기존의 민법 체계는 소유권과 채권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와 대등한 권리로 인격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법 행위’ 인식에서 개정안 추진
“인격권 침해 해결, 실효적 구제 수단”
인격권 명문화 추진은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위법 행위’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내 갑질, 불법녹음과 촬영, 학교폭력, 온라인 폭력, 가짜뉴스 유포, 디지털 성범죄, 메타버스상 인격 침해,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인격 침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법무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저해하고 심각하고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등 개인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인격적 가치를 갈수록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법의식을 법·제도에 반영하고, 시민들의 인격권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일반적 인격권 및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을 기본법인 민법에 명문으로 규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권 침해로 인한 법적 책임이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인격권이 침해당하거나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효적인 구제 수단이 된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법무부는 “이번 인격권 명문화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의 인격적 가치를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법조계는 인격권 조항 신설로 인격침해 행위 피해자가 직접적 구제를 받을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평가했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는 “그동안 판례로 인정돼 왔지만, 법률에 명문화되면 인격권 침해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근거가 명확해지는 효과가 있다”며 “법률에 명시됨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인격권 존중, 침해행위 예방 등의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격권 명문화 시도는 2004년과 2014년 두 차례 있었지만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