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온유파트너스 대표 A(53)씨가 지난 6일 오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첫 판결이 1심 법원에서 확정됐다. 법 시행 1년3개월 만이자 기소 4개월 만에 나온 ‘속전속결’ 결론이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1호 선고’의 원청 대표 형량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기록됐다. 특히 검찰의 ‘항소 포기’가 기업들에 가벼운 처벌로 끝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 “양형부당 다툴 여지 없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김동원 판사)은 지난 14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양시 소재 건설사 ‘온유파트너스’ 대표 A(53)씨에게 선고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했다. 원청 법인은 벌금 3천만원이 확정됐다. 다른 원·하청 책임자들도 1심 형량이 확정됐다.
이날 1심이 확정된 이유는 항소 제기 기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의 항소 기간은 판결 선고일부터 7일 내다. 온유파트너스 사건은 지난 6일 선고돼 14일 자정까지가 기한이었다. 피고인측은 1심 판결에 수긍해 항소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목할 부분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이유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관계자는 이날 <매일노동뉴스>에 “유족이 피고인과 합의해 처벌을 원치 않았고, 피고인이 사실관계를 인정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을 다툴 여지가 적었다는 취지다. 지청 내부의 수사·공소심의위원회가 항소 포기 의견을 낸 부분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입법취지 몰각, 그릇된 신호 우려”
검찰은 지난 2월28일 원청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원청 법인에 벌금 1억6천만원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들에게 모두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형량을 대폭 깎았다. “건설근로자 사이에 만연한 안전난간의 임의적 철거 등 관행이 사망사고 일부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온유파트너스의 하청노동자는 지난해 5월14일 요양병원 증축공사 중 무게 약 94킬로그램의 앵글 5개가 도르래에서 풀리며 그 반동으로 건물 5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작업계획서와 위험성평가는 실시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검찰은 항소를 선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1호 선고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월27일 법이 시행된 이후 기소된 사건은 현재까지 14건에 불과하다. 상급심에서 법리를 쌓아야 하는데도 너무 이르게 사건이 종결됐다는 것이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실형을 구형해 집행유예가 나왔는데도 검찰이 양형에 있어 다툴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외부 눈치가 보여 실형을 구형했지만, 집행유예가 나오더라도 항소하지 않아 (기업에) 사건을 빨리 끝내주겠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검찰이 입법취지를 몰각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대재해처벌법 1조는 목적으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처벌’ 등을 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엄중한 처벌을 예고해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조치를 하도록 심리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재해예방의 메커니즘”이라며 “그런데 경영책임자에게 비교적 가벼운 형으로 선고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항소가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검찰 자체기준보다 낮은 구형에도 ‘불항소’
무엇보다 검찰 스스로 마련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구형인데도 항소를 포기한 지점에 비판이 거세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3월께 일선 검찰청에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양형기준’에서 사망사고 범죄의 기본구간을 징역 2년6월~4년으로 정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 치사죄의 기본구간(징역 1년~2년6월)보다 약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당시 대검은 중대재해처벌법 법정형 하한선인 징역 1년 이상을 고려해 기본구간을 징역 2년을 초과하도록 설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온유파트너스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합의와 피해회복, 진지한 반성 등 감경인자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검찰은 구형을 기본구간보다 낮추고 1심에서 가벼운 처벌이 나오자 사건을 끝내버렸다”며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을 낮은 구형량과 불항소로 협력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소추권을 남용해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검찰의 불항소 결정이 ‘늑장 수사’와 맞물려 법 무력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까지 중대재해 수사 착수 사건 중 기소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 의정부지검 형사4부는 ‘중대재해 1호 사건’인 삼표산업과 관련해 발생 1년2개월여 만인 지난달 31일에서야 정도원 회장을 기소했다. 권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 속도를 늦추면서 기업 내부에 법이 사라졌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