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첫 전원회의가 1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노동계는 1만2천원을 요구하고,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동결안을 꺼내면서 익숙한 구도가 펼쳐지는 모양새다.
벌써부터 결과를 내다보는 시선도 있다. 이른바 최저임금 계산식, 다르게는 박준식(최저임금위원장)·권순원(공익위원) 포뮬러(계산식)다. 2022년 최저임금 심의 당시 처음 등장한 계산식이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2024년도 최저임금은 이미 지난해 12월21일 기획재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2024년 최저임금을 2022년 12월 정부가 ‘고지’하는 꼴이다.
당시 기재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1.6%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5%로, 고용률을 2022년보다 0.2%포인트 오른 68.7%로 발표했다. 계산식에 대입하면 경제성장률(1.6%)과 소비자물가 상승률(3.5%)를 더한 5.1%에서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0.2%)를 뺀 4.9%가 최저임금 인상률이다. 이를 다시 올해 최저임금인 9천620원에 대입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1만91원이다. 한때 여야 모두 인상을 약속했던 최저임금 1만원은 달성하는 셈이지만 세간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정부 직접일자리 늘어도 최저임금 낮출 건가?”
“최저임금과 노동생산성 연동? 그런 경제이론 없어”
이 계산식은 경제학적으로 근거가 부실하고 최저임금의 사회적 의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우선 학자들은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더하는 데는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는 “물가상승과 경제성장이 상관관계를 맺고 있어 두 지표를 동시에 사용할 때 유사지표를 중복해 사용한다는 비판이 없진 않으나 국민경제가 성장한 만큼 소득분배를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실질임금 유지를 위해 두 지표를 모두 활용하는 것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두 지표가 분리된 경제현상을 드러내는 것은 물가인상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심의 지표로 삼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를 고려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경제학적으로 경제성장률과 취업자 증가율은 비례관계”라며 “(최저임금위의 기존) 계산식대로라면 두 지표는 상쇄(+, -)되는 셈인데, 그렇게 되면 물가상승률만을 반영해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것이라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정부 개입으로 취업자 증가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비례성이 깨져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아진다. 정 교수는 “경기가 안 좋아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직접일자리를 늘리면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아지는 구조라 어떤 논리구조를 갖고 설계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교수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던 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통제하기 위해 끼워 만든 계산식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학자들은 이 계산식이 사실상 최저임금을 노동생산성에 연동시켜야 한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지표라고 설명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해당 산식은 ‘취업자당 국민총생산증가율’로 부를 수 있고,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면 노동생산성을 실질 기준이 아닌 명목금액 기준으로 따진 것”이라며 “신고전경제학파가 시장임금이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각이 있지만 최저임금을 노동생산성에 연동한다는 경제이론은 없다”고 비판했다.
“부처 지표에 매몰된 계산식,
최저임금 논의를 정부 하위파트로 격하”
나 교수는 이어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취지나 근거나 의의가 이런 계산식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며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할 때 빈곤선 아래에 놓이는 사례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본말전도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런 계산식은 법적 근거도 모호하다는 게 문제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법률이 정한 최저임금 심의 기준에서 벗어난 근거 없는 계산식을 가져와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최저임금위의 월권”이라며 “경제성장과 물가상승 같은 경제부처에서 주로 다루는 지표를 가감해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은 사회적 임금인 최저임금 논의를 경제부처의 하위파트로 격하시키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사회적 임금 논의가 정부의 경제부처에 종속된다는 얘기다.
학자들은 정당성을 찾기 어려운 계산식을 버리고 법률에서 정한 준거지표를 토대로 양극화 해소와 빈곤선 해소 목표라는 제도 도입 취지를 지키라고 촉구했다. 나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최저임금을 정할 때 분배 개선을 염두에 두고 소득분배조정분을 더해 정했다”며 “가구생계비를 보장한다는 기본적 취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최근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불평등이 확산한 만큼 소득과 분배 개선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이사장은 “법률과 규정에서 정한 지표(생계비·유사 근로자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등을 활용해 논의를 해야지 계산식으로 도출하면 안 된다”며 “여기에 빈곤선과 저임금 노동자 격차해소 같은 목표를 연구하고 공론화해 어느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어느 기간 동안 올려야 할지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