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다. 사측이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한 임금인상률을 노조와의 교섭에서도 그대로 밀어붙여 ‘노조 무력화’ ‘노조 패싱’ 문제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룹사 ‘맏형’ 격인 삼성전자의 노사협의회에서 결정된 인상률은 다른 계열사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섭 도중 ‘또’ 노사협의회에서 임금인상률 결정
14일 금속노련과 전국삼성전자노조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2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쟁의조정에 대해 조정중지 결정이 나온 뒤 노사 간 추가 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4일 노사협의회에서 올해 평균 임금인상률 4.1%(기본인상률 2%, 성과인상률 2.1%)에 합의했다고 공지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노사가 첫 임금협약을 체결할 때에도 사측은 노사협의회에서 정한 임금인상률을 고수하면서 논란이 됐다. 노조와 교섭을 이어 오고는 있지만 노사협의회를 통해 사실상 ‘노조 힘 빼기’ ‘교섭 무력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사측이 지급하기로 한 노사상생기금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임금협약 체결시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에 노사상생기금 3천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현재까지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지난해 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사회단체에 기금을 지급할 계획을 알렸는데 사측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용처를 따지며 시간끌기를 하다 논의가 흐지부지됐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적시된 내용도 “실제와 다르다”고 노조는 지적한다. 2021년 해당 보고서에서 사측은 “삼성전자는 노조와 상호 신뢰하는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기 위해 각 노조와 수시로 간담회를 개최하고 노조 제안사항을 청취하고 개선 항목 등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보고서에서는 “단협 체결식에서 노사화합 공동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삼성전자의 미래지향적 노사관계를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경영진과의 간담회나 노사 공동선언문에 포함된 노사상생TF 모두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간담회는 의견 청취 수준에 그쳤고, 노사상생TF에서는 근로조건 개선 등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측 관계자는 노사상생기금 지급과 관련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적법한 기금 사용을 위해 노조에 확인을 요청했는데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확인을 받으면 즉시 지급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사상생TF를 통해 (근로조건 개선 등에 대해) 지난해 말까지 10여차례 논의를 했다”며 “논의했던 사안들을 올해 교섭때 노조에 사측 안건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계열사도 삼성전자 기준 따라가나
삼성전자가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임금인상률이 다른 계열사에 사실상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올해 직원 평균 임금인상률을 4.1%로 책정했다고 사내에 공지했다. 기본인상률 2%에 개인별 평균 성과인상률 2.1%를 더한 것으로 삼성전자 노사협의회 결정과 동일하다. 삼성전기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엔지니어링 상황도 비슷하다. 삼성엔지니어링노조(위원장 김봉준)에 따르면 노사는 지난 10일까지 16차례에 걸쳐서 임금협상을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같은날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노조는 기본인상률 5.5%, 등급별 연봉 설정 구간인 ‘페이존(Pay-Zone)’ 상향조정, 리프레시 휴가 3일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사측은 ‘기본인상률 2% 이상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봉준 위원장은 “삼성전자 노사협의회에서 정한 인상률을 다른 계열사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려 하는 것”이라며 “지난 4개월간 교섭을 하면서 기본인상률에 대한 사측 입장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회사 실적과는 상관없이 (그룹사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