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위원장과 손을 잡고 위원장실로 들어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한국노총 방문을 계기로 국민의힘과 한국노총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하는 모양새다. 첫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한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통해 노동현장 목소리를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윤 당선자에 대한 우려를 조금 내려놓는 분위기가 한국노총 내에서 감지된다.

윤석열 “국정운영 과정서 도와 달라”

17일 한국노총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5일 한국노총을 찾은 윤 당선자는 국정운영 과정에서 한국노총 등 노동계의 목소리를 경청해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일 간담회는 윤 당선자와 김동명 위원장 등 양측 대표자 간의 사전 인사, 한국노총 상임지도부·중앙집행위원과 국민의힘 관계자와의 정식 간담회 두 가지 행사로 치러졌다.

한국노총은 임시 대의원대회 투표를 통해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대선 후 처음 만나는 자리라 윤석열 당선자와 김동명 위원장의 만남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은 빗나갔다. 윤 당선자는 마중 나와 있던 김 위원장의 손을 덥석 잡고 인사 장소인 위원장실로 함께 걸어갔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활짝 웃으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비공개 인사 자리에서 한국노총 대선방침이 화제에 올랐으나 윤 당선자는 선거가 끝났으니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말로 정리했다.

정식 간담회는 김 위원장의 환영사, 윤 당선자의 인사말, 산별·지역본부 대표자 정책 질의·건의, 임이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의 답변, 윤 당선자의 답변, 김 위원장의 마무리 인사 순으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피해 노동자 지원, 근로시간·최저임금, 국민통합을 위한 적극적 대화, 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사업 소개를 화두로 꺼냈다. 그는 “새 정부의 노동 분야 국정과제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당선인께서 일부의 우려를 익히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며 “근로시간과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체계 문제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핵심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이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태도가 향후 5년간 노정관계의 시금석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뢰를 쌓아 가는 노사정 대화가 가능하도록 관심을 가져 줄 것과 플랫폼 노동자를 지원하는 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도 호소했다.

‘노동의 가치’ 거듭 강조한 윤석열
“노동계 출신 이정식 장관 지명 평가할 만해”

윤 당선자는 “여러분들을 뵐 때마다 처음부터 한국노총의 친구가 되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앞으로도 한국노총의 변함없는 친구로 계속 남겠다”며 “한국노총이 추구하는 더 나은 사회,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저 역시도 꾸준히 소통하며 우의를 다져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난제가 발생하면 솔직히 털어놓고, 대안이 필요하면 함께 논의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 당선자는 짧은 인사말 중에 ‘노동의 가치’라는 말을 두 번 언급했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 국가나 사회나 기업은 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어려운 그런 시대가 됐다”며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노동자가 당당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제가 드린 약속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 후보자와 임이자 간사 등을 통해 노동현장 목소리를 국정운영 과정에 잘 반영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산별·지역본부 대표자들의 정책 질의·건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제조업 사업장 기업변동시 고용안정, 운수·물류 현안에서 정례적인 노정 대화, 정부와 공공부문 노동자 간의 지속적 노정협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 유보, 우정사업본부의 우정청 개편, 공공의료 강화, 공무원·교원노조 근로시간면제제도 적용, 지역단위 노사민정 거버넌스 활성화 등을 건의했다. 제안을 들은 윤 당선자는 노동자뿐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도 관계된 얘기들로 향후 참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정식 장관 후보자와 자신의 취임 후 국정운영에 도움을 달라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좋은 정책으로 보답해 달라”고 말했다.

윤 당선자의 한 시간가량 이어진 이날 방문은 양측 관계개선의 계기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친한국노총’이라며 호의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노총 한 관계자는 “보수 경제학자를 노동부 장관에 지명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이정식 전 사무총장을 노동부 장관에 지명해 깜짝 놀랐다”며 “역대 정권 누구도 이 정도로 노동계에 손을 내미는 과감한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간담회 후 김 위원장은 “지금은 예단해서 윤 당선자를 평가하기보다는 취임 후 내놓는 정책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며 “구체적 정책이 드러나면 협조할 것은 하고, 아니면 반대하며 투쟁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