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트진로 홈페이지 갈무리
법원이 소주 생산공장 소속 노조간부들의 겸직을 불허해 반·조장직을 박탈한 하이트진로의 조치를 부당직위해제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직위해제 과정에서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간부들이 겪는 생활상 불이익이 크다고 봤다.
중노위 위법 판정에도 행정소송
사측 “노조간부와 양립 어렵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하이트진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직위해제 및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하이트진로가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만이다.
사건은 노조간부의 인사 문제가 불거지며 시작됐다. 하이트맥주노조 간부 A씨 등 4명은 소주를 생산하는 마산공장의 생산관리직으로서 반장과 조장을 각각 맡아 왔다. 그런데 회사가 2020년 7월 노조간부와 반·조장 겸직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마산공장 노동자 28명의 반·조장직을 해제하면서 노사갈등이 촉발됐다.
회사는 보직을 해제한 자리에 다른 직원 10명을 발령했다. A씨 등은 직위해제가 부당하고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경남지노위는 “직위해제는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로 인한 신분상 갈등과 경제적 불이익이 있다”며 불이익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는 결정을 하자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3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 사측은 “노조간부 업무 수행으로 인한 반·조장 업무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직위해제가 이뤄졌다”며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반·조장은 비조합원과 조합원을 형평성 있게 대우해야 하는데, 특정 노조간부 지위와 양립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법원 “반·조장 보임 원천 봉쇄 부당”
“회사 이익만 추구 관점에서 직위해제”
법원은 부당한 직위해제가 맞다며 사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반·조장의 직책을 맡은 근로자가 단지 노조간부라는 사정만으로 다른 노조 조합원에게 형평성 있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직위해제의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노조간부로서의 업무 수행으로 인해 반·조장 업무의 공백이 일부 발생하더라도 업무의 조정·분배 등의 조치 없이 보임을 원천 봉쇄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겸직금지 방침이 그대로 이뤄지면 중간관리자는 노조간부를 언제나 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 등의 생활상·경제적 불이익이 크다고 봤다. A씨 등은 직위해제로 매월 받는 수당(반장 28만원·조장 23만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표창 대상자로 선발될 기회도 박탈당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아울러 노조가 겸직금지를 반대해 왔는데도 회사가 설득하지 않았다며 ‘신의칙상 협의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직위해제 조치는 부당노동행위 판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반·조장의 직책에 있는 근로자는 오직 회사 이익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부당한 관점에서 직위해제가 시행됐다”며 “노조의 조직 또는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노조의 단결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산공장은 과거 오랜 기간 노조간부에게 겸직을 허용해 왔다.
A씨 등을 대리한 박훈 변호사(박훈법률사무소)는 “하이트진로가 반·조장을 수행하는 노조간부를 직위해제해 생산에 방해되는 사람들로 취급했다”며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인데도 노동위원회와 행정소송이 장기간 걸린 것은 ‘생산성’ 운운하는 사측의 억지 주장에 귀를 기울인 결과여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항소하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