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에 이른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가 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장기간 야간근무를 하며 불면증과 불안 장애가 심해져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낮은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판단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남재현 판사는 지난달 20일 청소노동자 A씨의 남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지난 11일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2007년부터 13년간 부산지하철에서 청소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2020년 7월 휴직했다가 두 달 뒤 집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 남편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됐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신청했지만 거절됐다. 스트레스의 정도가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저하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유족은 지난해 6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작용해 망인에게 불안·우울장애가 발병했거나 크게 악화했다”고 판시했다.
특히 장기간 야간근무가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A씨는 입사 이후 약 4년간 야간근무를 하며 불면증이 생겼고, 2011년 9월께 한 달 정도 휴직했다. 이후 오후반으로 옮기면서 불면증이 호전됐다. 재판부는 “망인의 불면증, 혼합형 불안과 우울장애의 발생에는 장기간의 야간근무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씨는 주간근무로 옮기게 됐지만, 2019년부터 업무분장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다시 불면증과 우울증이 재발해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법원도 이 부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씨는 관리자가 바뀌며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토로했다”며 “직장 갈등 이전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점을 볼 때, 우울증 재발에는 직장 갈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실제 A씨는 2020년 5월부터 다른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며 직장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두 달여 만에 휴직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건강도 나빠진 상태였다. 사망 직전에는 공황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당시 그는 가족에게 “휴직이 끝나도 돌아가기 싫다. 정년까지 못 하겠다”고 호소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조애진 변호사(법무법인 시대로)는 “고인은 승객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장기간 야간에 화장실을 청소했다”며 “대체로 중년 남성인 반장이 청소노동자를 관리하면서 ‘어이’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도 고인의 노동에 대해 ‘낮은 사회적 지지’와 ‘노력 보상의 불균형’이라고 표현했다”며 “그림자처럼 일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면 누구나 고인과 같이 정신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