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회사가 최저임금을 회피할 의도로 임금협약을 체결해 택시기사의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한 것은 탈법행위로서 무효라고 대법원이 재차 확인했다. 2019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상황이라 법조계는 이번 대법원 선고가 향후 유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최저임금법 시행 이후 소정근로시간 단축
8년에 걸쳐 2시간30분까지 줄인 회사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퇴직한 택시기사 A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본안 심리를 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A씨 등은 경기도 성남의 택시회사인 B사와 C사에서 일하다 2017~2018년께 각각 퇴사했다. 회사는 기사들에게 ‘고정급’과 회사에 납부하는 운송수입금(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고에 따른 임금(초과운송수입금)’을 매달 지급해 왔다.
그런데 초과운송수입금을 택시기사의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임금 범위에서 제외하는 최저임금법 특례조항(6조5항)이 2007년 신설된 이후 노사 간 갈등이 빚어졌다. 사측은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나갔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분모’에 해당하는 근로시간을 줄이면 ‘분자’인 고정급을 올리지 않아도 최저임금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B사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기존의 1일 6시간40분에서 2시간30분으로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C사도 2시간40분으로 근로시간을 줄였다. 그러자 A씨 등은 실제 운행시간의 변동 없이 소정근로시간만 단축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으므로 미지급 임금을 지급해 달라며 2019년 8월 소송을 냈다.
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인용
“엇갈린 하급심 판결 영향 미칠 듯”
법원은 2019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하며 택시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 “소정근로시간 단축은 특례조항이 실질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국민의 안전 및 교통편익 증진과 같은 입법 취지를 잠탈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탈법행위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1심도 특례조항 시행에 따라 고정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것을 회피할 의도로 임금협약을 변경한 것이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주기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시간당 고정급을 높이는 방식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특례조항은 실제 운행시간은 전혀 변함이 없는데도 형식적으로만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시간당 고정급이 고시된 시간급 최저임금 수준을 충족하도록 하는 편법을 예정한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특례조항이 고정급 인상을 목적으로 신설됐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2009년의 1일 6시간40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액을 산정해 미지급 퇴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사측은 “근로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자율성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근무형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했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도 소정근로시간 단축 합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기사들을 대리한 강호민 변호사(법무법인 오월)는 “하급심의 결론이 나뉘는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소정근로시간 단축을 무효로 본 전원합의체 판결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향후 진행될 하급심 판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택시기사들의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부산의 택시기사 400여명이 39개 택시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고, 의정부 택시기사들도 같은 취지의 판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