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여성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와 여성 인권·노동권 존중 등 새정부에 바라는 정책 방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윤석열 정부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올해 사업계획을 전면 재편했다. 대선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난 노동시간 유연화와 직무급제 도입 추진이 현실화하면 투쟁상황실을 설치해 대정부 투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노동개악 저지투쟁 준비·전개 필요”

29일 한국노총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 탄생이라는 변화한 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 정기대의원대회를 통과한 사업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지난달 24일 정기대대에서 통과한 사업을 한 달여 만에 재편한 셈이다. 대선 전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윤곽을 확인한 것이 사업 재편의 배경이 됐다.

윤석열 당선자의 노동정책은 노동시간은 유연화하고 임금인상은 제한한다는 말로 축약할 수 있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는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1주에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겨 일을 시킬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에는 스타트업을 포함한다. 근로기준법 개정사항인 선택근로제는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지만, 특별연장근로 대상 확대는 정부가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직무급제나 성과급제 도입·적용을 활성화하려는 계획도 내놓았다. 호봉제를 손보겠다는 얘기다. 금융권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 광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지난 24일 고용노동부는 인수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방안,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구축 등을 보고했다.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친기업적 성향을 띠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향후 주요 노동의제 관철과 함께 기존 노동조건의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정세를 진단했다. 사회적 대화, 기후위기 대응,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노동이사제, 최저임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등 거의 모든 노동의제가 후퇴할 수 있다고 봤다. 정책본부·조직강화본부·공무원본부·대외협력본부·산업안전보건본부 등 사무총국 모든 사업을 대정부 투쟁을 염두에 두고 수립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사회적 대화로 포장한 노동개악 우려

최저임금 문제가 노정갈등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관련 윤 당선자의 시각에 따라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와 사용자쪽이 업종별 차등(구분)적용 도입 요구를 노골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총은 투쟁에 방점을 두고 최저임금위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구분적용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최저임금법 개정도 추진한다.

사회적 대화가 정부 주도의 노동개악 창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대비한다는 문구도 담았다. 반노동 정책에 기반한 대화 의제는 거부하기로 했다. 정부 주도의 임금체계 개편 시도에 맞서 한국노총 차원의 대안적 임금체계를 수립하고, 공공부문 산별조직과 공동대응한다.

유연근무제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현행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운영실태와 문제점을 확인하는 실태조사를 올해 상반기에 시작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시행령을 통해 노동이사제 도입 무력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노조 조합원에게 노동이사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조처가 추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공부문 노조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기 위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할 것이 분명해지면서 대응책을 마련한다.

한국노총은 정부·여당 주도로 노동법 개악 논의가 불거지면 전 조직을 투쟁체계로 전환한다. 투쟁상황실을 설치해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하반기 임시·정기국회 개회에 즈음한 11월 조합원 3만~5만명이 모이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의제가 실종된 대선 국면에서 올해 사업계획을 수립했고, 윤석열 후보 당선 이후 새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 구체화하면서 새로운 대응이 필요해졌다”며 “한국노총이 대선의제로 제안했던 정의로운 성장, 포용적 투자, 공정한 분배를 현실화하기 위해 새 정부 임기 내에서도 사업과 투쟁을 중단 없이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노총 여성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통의동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가족부 폐지와 여성할당제도 수정 등의 여성부문 대선공약 수정을 요구했다. 여성위는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하려는 차별 정책을 중단하라”며 “양질의 여성일자리 확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여성대표성 강화, 일터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